6백명의 조절위 구성 음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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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73년8월25일 평양 측이 일방적 성명으로 남북 조절위 회담을 중단시킨 후 서울 측은 대화 재개를 바라는 민족의 열망과 국제 세론을 받아들여 대화 재개 노력을 성의 있게 해왔다.
그러나 평양 측은 대화 재개에 응하는 것이 마치 큰 생색이나 되는 것처럼 오만불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재개 흥정을 미끼삼아 터무니없는 요구를 내세워 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열렸던 부위원장 회의에서 평양 측은 조절위 개편 문제에 있어 느닷없이 정당·사회 단체 및 각계 인사 등 각 3백명씩 양측을 합해 모두 6백명 이상의 대 회의를 열자고 제의하고 나섰는데, 이는 조절위 재개를 무작정 지연시키려는 그들의 전술의 표현이라 볼 수밖에 없다.
첫째, 남북한 분단 대립의 가혹한 역사적 현실에 비추어 남북 관계의 개선 작업,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일 문제를 다루어야할 조절위 회의는, 되도록 소수로 구성해 가지고, 은밀한 대화를 나눠야만 문제 해결에 차분하게 접근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0명 선을 가지고 회의를 구성하는 것도 인원이 많다 하겠는데, 무려 6백명의 대의원 구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북한 당국자들이 여러 문제들을 착실하게 풀어나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조절위를 도리어 그들의 소위 「민족대회의」로 변질시켜, 공산주의의 일대선전 무대로화 하겠다는 것으로 단정치 않을 수 없다.
둘째, 조절위를 이처럼 변질시키고자 하는 평양 측의 주장은 『7·4 공동 성명』 및 『남북 조절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합의서』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7·4 공동 성명』은 쌍방 위원장이 『각각 상부의 뜻을 받들어 서명한다』했고, 상기『합의서』는 조절위는 쌍방이 각각 『장 차관 이상의 당국자로 구성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두가지 조항은 조절위가 본래부터 남북한 『당국자간의 회합』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에 추호도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평양측의 요구를 받아 들여 정당·사회 단체 대표를 참가시킨다는 것 자체가 큰 양보라 하겠거늘 그 회합은 어디까지나 그 인원을 축소시키고 또 어떤 경우에도 평양측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당국자의 참가를 배제한 회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상기 합의서는 조절위의 기능을 하나로서 『남북의 정당·사회 단체 및 개별 인사들 사이의 광범한 정치적 교류를 실현하는 문제를 협의 결정하여 그의 실행을 보장한다』 (2항 「나」)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조절위를 통한 조절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치적 교류를 추진해 보겠다는 것이지, 조절위 자체를 정당·사회 단체·각계 인사의 연석 회의로 변질시켜도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작년 11월, 북한의 대 유엔 정책이 파정한 뒤 북한 공산당은 강·온 양파, 즉 주전파·협상파로 갈라져 심각한 내분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이 내분 때문에 북한 당국의 대남 전략·전술은 갈팡질팡하여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남북 대화 재개를 되도록 지연시키는 정책을 쓰고 있는 것은 이 내분 때문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내분이 강경파 득세의 방향으로 기울어지면, 조절위를 변질시키려는 민족 대회의로 변질 시키려는 책동은 무력 침공을 은폐키 위한 위장 전술이 될 수도 있다.
여기 우리는 북한 당국이 하루속히 적화통일의 망상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고집을 버리고 일절 터무니없는 주장을 철회하여 대화 재개 요청에 즉각 응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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