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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효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무엇이 효인지는 알아도 효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춘추시대의 중국에 있던 얘기다. 똑같이 노모를 모시고 있는 두 친우가 있었다.
둘 다 효심이 지극하였다. 그러나 갑은 어머니를 아무리 극진히 공경하여도 어머니는 뭔가 흡족하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을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갑은 혹은 자기의 효도에 부족한 바가 있기 때문인가 보다 생각했다.
어느 날 그는 을에게 어떻게 효도를 하고 있는지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던 차 갑은 을의 집에 이르러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을은 집안에 들어서 신발을 벗자 때묻은 두발을 쭉 내뻗었다. 그러자 을의 어머니가 부지런히 물을 떠다가 정성스레 아들의 발을 닦아주는 것이었다.
효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어 드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부모에게 외형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잘 해 드리는 것만이 효는 아니다. 이런 것을 을은 갑에게 알려 준 것이다.
또 이런 고사가 있다. 중국의 어느 효자가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다가 통곡을 했다. 지난번에 맞던 매보다 이번 매가 훨씬 덜 아팠기 때문이다. 노부가 어느 사이에 그만큼 노쇠해 지신 때문이라 여기니 슬픔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효자는 회초리를 맞게 될 때면 엉엉 울어가며 엄살을 부리면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나를 매질하실 때의 아버님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리실까, 그리고 아버지께서 매질하시는데 얼마나 힘이 드실까, 이런 생각에서 그는 매질을 피하는 게 효라고 여겼던 것이다.
효도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효는 어떤 일정한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더욱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더우기 효란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다.
지난 24일 눈 덮인 어느 시골 산길에서 부자의 동사체가 발견되었다. 그 아버지의 가슴 위에는 10살난 아들이 벗어 놓을 어린이 잠바가 걸쳐 있었다.
잔뜩 술에 취한 채 영하 20도의 눈 쌓인 산길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올라간 아버지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도 있다. 추운 밤길을 가면서 술에 취한 아버지의 무지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서 죽은 소년이 효도를 제대로 배웠을 리도 없다. 그런데도 이 참상이 우리의 가슴을 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효를 포함한 모든 옛 미덕들이 자취를 감춰 가고 있는 풍토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일까.
감동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추위는 술 취한 아버지보다 어린 소년이 더 탔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기 몸보다 쓰러진 아버지의 몸을 먼저 염려한 소년은 철들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인론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 보다. 온갖 악덕이 횡행하는 메마른 풍토 속에 그래도 한 가닥 미덕은 봄을 기다리며 살아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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