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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전쟁의 신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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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의 단독 변동환율제 이행은 국제통화 전쟁의 도화선 역할을 할지 모른다. 아직 정확한 전망을 내리기엔 이르지만 작년 2월 「달러」파동이후 소강상태를 유지해온 국제통화경제가 다시 한번 격동을 치를 여건에 있는 것이다. 석유 파동에 원인을 둔 국제 통화질서의 개편 작업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번 「프랑」의 공동 변동환율제가 미·EC·일본·한국경제에 어떻게 파급될 것이며 이들 국가의 입장은 어떤지를 살펴보면-.

<미국>「달러」복권 「무드」에 찬물|고정 환율제 복귀 구상 무너질 위험
「프랑스」의 단독 변동제 이행이 평가절하 경쟁의 시작이라고 보고 미국은 당혹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석유 파동을 계기로 미국제수지는 호전일로에 있어 「달러」의 복권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이번 「프랑스」의 공동 변동제 이탈을 계기로 평가절하 경쟁이 시작되면 모처럼 회복세를 보이던 「달러」강세가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각국이 독자적인 국제수지 방어 정책을 취해 평가절하·수출진전 경쟁이 재발되는 사태다. 미국은 현 석유위기도 소위 「키신저」구상에 의해 석유 소비국이 공동 보조를 취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닉슨」대통령이 2월11일 「워싱턴」에서 석유 소비국 회의를 개최하자고 제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국제 통화 문제에 있어선 작년 2월 「달러」의 재절하에 의해 형성된 각국 통화의 평가수준을 유지하고 변동제 아래서의 평가「붐」을 만들며 이를 통해 고정환율제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슐츠」재무장관은 지난 18일 「로마」20개국 재상회의에서 원유가격의 인상과 평가 절하 및 보호무역 경쟁을 방지하는데 다같이 노력하자고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이 지난 연말 엔화를 「달러」당 2백80원에서 3백원으로 절하한바 있고 이번 「프랑스」가 다시 평가절하의 문을 엶으로써 미국의 기본 구상은 완전히 차질을 빚게 되었다.

통화 동맹 목표에 큰 위협|「마르크」와의 균형 깨져 서독에 충격
그동안 EC 공동 변동 환율제는 서독과 「프랑스」를 2대 지주로 지탱되어 왔다는 점에서「프랑스」의 이탈은 공동 변동제의 붕괴를 뜻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나라는 역시 서독이다. 서독은 「프랑스」의 이탈이 80년 EC 통화 통합 목표에도 큰 위협이 된다고 보고 이를 말리기 위해 30억불의 중기성 차차 공여까지 제의했다 한다. 사실 「프랑」을 강세 통화「마르크」와 상하 2·25%의 축소 변동폭 속에 묶어 두는 것은 큰 무리일지 모른다.
서독은 그동안 긴축 정책을 강행, 어느 정도의 안정기조를 구축했고 외화 보유고도 3백억불이 넘는다. 또 국내「에너지」자원이 풍부, 석유「쇼크」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그 반면 「프랑스」는 외화준비가 80억불밖에 안 되는 데다 금년에 약 34억불의 국제 수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또 그동안 고도 성장 정책을 추구, 물가 상승율도 높다. 때문에 서독은 「프랑스」의 조처에 동정을 하면서도 「유럽」이 통화동맹이 깨진다는 점에서 큰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동안 영·이의 공동 변동제 불참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프랑스」가 석유 위기 속에서 자국경제 방위 정책을 맨 먼저 강행했다는데 대해 서독 뿐 아니라 EC 각국이 섭섭해하고 있다.
이번 「프랑스」의 조처로 금년 초부터 제2단계에 진입하게 되어있던 EC통화 동맹이 오히려 후퇴하고 공동 농업 정책도 차질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일본>평가 절하 경쟁예방을 희망|원자재 부족으로 치명적 약점 지녀
변동환율제의 이점을 이용하여 이미 엔화를 「(스미드 소니언」합의시의 환율수준(불당 308엔)까지 접근시킨 일본은 이번 「프랑스」의 공동 변동제 이탈이 유발할 국제 통화 추이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석유의 99·7%와 원자재를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은 석유위기와 국제무역전쟁에 대해선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엔화의 대「달러」환율은 최고 2백65엔으로부터 3백엔 선으로 절하되었는데 만약 서독이 「프랑스」를 뒤따라 자유 변동제를 실시, 평가 절하를 한다면 일본은 다시 절하를 해야할 형편이다. 이미 21일 「엥」화가 사실상 3·33% 평가 절하됐다.
한 때 1백90억불까지 갔던 일본의 외자준비는 작년의 원자재 파경으로 1백20억불 수준으로 무너졌으며 금년 봄엔 1백억불 선을 하회할 전망이다.
일본도 미국과 같이 변동 환율제 아래서의 행동 기준 설정으로 평가절하 경쟁의 제도적 예방을 기대하고 있다. EC제국이 평가절하 경쟁을 하면 일본도 거기에 안 끼여 들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일본은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의 의사에 도전해서 자유로이 「엥」화의 절하경쟁을 벌일 입장이 못 되어 더욱 난경에 몰린다.
세계가 총 「플로팅」시대에 돌입하게되면 자국본위의 정책 강행이 성행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무역의존도가 높고 원자재 자급율이 낮은 일본으로선 치명타를 입게된다.
따라서 이번 「프랑스」의 공동 변동제 이탈자체보다도 그 위의 서독 및 미국의 동향에 대해 날카로운 관심을 쏟고 있다. 일본 대장성이나 일은 측은 「달러」당 3백「엥」의 평가수준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천명하고 있지만 물밀 듯이 들어오는 절하 압력을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한국>일·독이 뒤따르면 수출 타격|수출에 주도된 경기…불황 탈출 막혀
한국의 「프랑스」에 대한 무역 및 경제 의존도는 아직 미미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평가절하 자체만은 별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프랑」의 평가절하가 EC제국에 파급되고 또 이것이 일본·미국 등으로 확대되면 사태는 심각하다. 한국은 「달러」기준이기 때문에 EC통화의 절하는 자동적인 원화절상이 된다. 「유럽」지역에 대한 수출비율은 약12%이며 이것은 앞으로 계속 높여야할 형편에 있다. 따라서 EC통화의 평가 절하는 한국의 생산 경쟁력에 그만큼 위협이 된다.
물론 원리금 상환 부담이나 수입면에선 다소 유리할 지 모르지만 비중이 높지 않다. 가장 우려해야 할 사태는 이번 「프랑스」의 조처를 도화선으로 해서 전면적인 통화·무역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국민 총생산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60%나 되며 경기를 수출이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통화전쟁으로 세계무역이 침체되면 한국의 경기는 탈출구가 없다. 좁은 국제시장에서 난전을 벌여야할 형편이다.
석유가의 폭동으로 국제수지 전망이 불투명한데 수출조차 침체되면 외환면에서 심각한 압력이 될 것이다. 물가나 원자재 확보면에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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