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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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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틀 후면 음력설이다. 한 때 이중 과세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 대체로 음력설은 방학중에 들어 있어서, 학교 방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히 쉬는 날이 된다. 그러나 공휴일은 아니어서 많은 사람이 쉬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음력설은 우리들에게 있어 마음의 고향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고 따질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너무 까다롭게 굴지 말자. 하여간 음력설은 뿌듯한 추억의 날이다. 설날이 오면 옛날 어렸을 적의 생각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아직도 어린이들이 설날에 입는 색동저고리가 그 추억의 상징이라 하겠다. 또 그 색동저고리의 초록빛·빨간빛은 그 추억의 빛깔이기도 하다.
예전에 설날엔 무엇인가 평화로왔다, 무엇인가 다정하였다. 세배를 드리고 오고가는 정이 두터웠다. 그 당시의 현실은 어지럽고 험악하고 고달팠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심에 비친 설날은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것은 어머님의 따뜻한 품이었다. 돌이켜 보면 눈물이 저절로 삥 돌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시간들이었다.
이중 과세를 금하고 음력설을 쉬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낭비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설을 두 번 쉬면 그만큼 낭비하게 되는 것을 누가 모르랴.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음력설을 쉰다. 모든 국민이 된다해도 잘못은 아닐 것이다. 내놓고 못 쉬면 적어도 마음속으로는 쉰다.
일제 시대에는 양력설은 일본인의 명절이고 음력설은 한국인의 명절이었다. 달리 말하면 양력설은 누르는 자의 명절이요, 음력설은 눌리는 자의 명절이었다. 하나는 가진 자의 명절이요, 다른 하나는 가진 것 없는 자의 명절이었다. 또 중국사람들이 음력설을 철저히 쇠는 것을 보면 음력설의 기원은 그쪽에 있는 것 같은데, 하여간 음력설은 오랜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만큼 말해오고 보니 마치 음력설 예찬론이 된 것 같다. 그러나 물론 일부러 예찬하려는 것은 아니다. 음력설은 가난하고 삶이 고달픈 대다수 국민의 명절이기에 하루쯤 전국민적으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이 낭비하면 얼마나 낭비하겠는가. 그 낭비를 메우고도 남을 뜻이 있다면 그 하루의 쉼이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과 평화를 준다면 그 낭비는 국민의 정신적 「에네르기」를 저장하는 귀중한 투자라 하겠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얼마 전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들렀을 때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그때 제자들은 분개하여『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이것을 팔면 많은 돈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을텐데』라고 말하였다.
여기 대하여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분 주변에 있겠지만 나는 여러분과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여자가 내 몸에 향유를 분 것은 나의 장례를 위하여 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일화는 인생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양력의 논리가 있다면 음력의 논리도 있다. 후자는 결코 비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도대체 문화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한글 전용문제도 강요할 것이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한글과 한문을 어우러 쓰는 것이 좋다면, 음력설도 하나의 문화현장일진대 민중의 감정이 흐르는 데로 내어 맡기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최명관 숭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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