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심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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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장자의 제물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지 아닌지를 자네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 모른다고 말하면 정말로 내가 모르고 그러는지 아닌지를 자네는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백성이 습기 찬 곳에서 자면 틀림없이 신경통에 걸릴 것이다. 그러나 수중에서 사는 고기는 그런 병엔 걸리지 않는다.
또 만약에 사람이 나무 위에 오른다면 떨어지지나 않을까 하고 벌벌 떨 것이다. 그러나 늘 나무 위에서 살고 있는 원숭이는 태연하지 않는가.
곧 사람과 붕어와 원숭이에게 있어서는 각기 평소에 익힌 곳이 제일 살기 편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무엇이 가장 올바른 생활의 장소로 알고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그것은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소나 양을 즐겨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먹고, 독수리는 쥐를 즐겨먹는다. 그런데 이 넷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맛을 알고 있다고 자네는 생각하는가.
넷은 각기의 기호에 따라 맛이 좋다고 할 뿐 정말 맛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생각부터가 달라진다.
지극히 평범한 얘기다. 장자 만한 위인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굳이 장자가 힘들여 그걸 얘기한 것을 보면 그의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평범한 얘기가 귀에 잘 들어가지 못했는가 보다.
요새라고 사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니다. 장자의 그런 말이 새삼스레 비범한 말같이 들리는 것을 보면 역시 원숭이는 나무 위가 제일 살기 좋다 하고, 붕어는 붕어대로 물 속이 제일 살기 좋다고 우기는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게 틀림없다.
가령 북한의 대남 심리전 방송만 해도 그렇다. 그 방송을 어쩌다 듣는 사람들도 아무도 그 방송이 알려주는 얘기를 믿지 않는다. 나무 위에서 사는 생활이 제일이라고 우겨대는 원숭이의 말과 너무도 같다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호기심이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극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혹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뿐이다. 그 이상을 넘지는 않는다.
땅 위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것인지는 사람이 제일 잘 안다. 나무 위에서 사는 원숭이가 알 턱이 없다. 이렇게 누구나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얘기는 우리네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북쪽 방송에서 뭐라고 말하든 우리네 물가가 얼마나 올랐으며 취업율이 얼마나 되는지도 우리네가 더 잘 안다.
따라서 원숭이가 붕어로 바꾸어지지 않는 한 원숭이에게 제일살기 좋은 곳은 물 속이 아니라 나무위인 것이다. 누가 뭐래도 원숭이는 나무 위를 택할게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북쪽에서 우리에게 무슨 방송을 하든, 두려워할 것은 하나도 없다. 땅 위보다도 나무 위가 더 살기 좋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질 때가 사실은 가장 두려워 해야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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