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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협관계의 전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근4개월간이나 연기돼 오던 제7차 한·일 각료회담이 26일 하루동안 동경에서 열리게 되었다. 일본의「나까소네」통산상은 이에 앞서 23일 한·일간의 새로운 경협 방향을 밝히는 이른바 5개항「대한경제협력기본방침」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양국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5개항 대한 경협 기본방침내용은 종래 정부중심으로 추진돼 오던 경협을 민간「베이스」중심으로 전환하고, 한국국민전체의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것만 골라 그 내용과 실시방법도 양국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나까소네」통산상은 앞으로 양국각료회담은 한·일 협력관계의 기본방향만을 설정한다는 본래의 성격을 관철하고 구체적인「프로젝트」별 논의는 실무「레벨」에 맡긴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나까소네」통산상의 이 같은 발표내용은 최근 고조되고 있는 한국국민들의 일본에 대한 경제예속화 우려를 해소시키자는 방향설정이라 할 수 있다. 한·일간의 경제관계는 65년의 국교재개 이후 급격한 자본도입증가를 기록했고 이 자본도입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원·부자재의 대일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일본을 떠난 한국경제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미국의 무상원조가 점감추세에 접어든 이후 고도성장정책을 추구함으로써 자본의 해외의존도는 날로 심화하고 이 과정에서 한·일 각료회담은 바로 연간 외국자본도입규모를 결정하는 회담으로 되어 왔던 것을 가리울 수 없다.
이리하여 지난 9월말 현재 일본으로부터의 자본도입누계는 14억4천4백만불로 우리나라 외자도입총액 중 25.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근년에 들어서는 일본으로부터의 차관이 미국을 앞질렀고 올해만 해도 외국인투자의 95%이상이 일본계자본이었다는 사실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 동안 일본은 국제수지의 엄청난 흑자국으로 해외투자시장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실정에 있었으며, 그 반면 한국은 고도성장정책추진을 위해 대량의 해외자본이 필요했던 탓으로 이같은 편의적 협력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하 일본은 고자세로 상업「베이스」에 가까운 조건의 재정차관까지도「원조」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써 왔고, 우리는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차관을 얻는데 급급했으므로 여기 이같은 협력 관계를 구걸식이라고 혹평하는 사람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국제의 경제관계란 어디까지나 호혜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상호협력체제가 기본이 돼야 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이번「나까소네」통산상의 발표내용은 이러한 한·일 경제관계에 따른 국민감정의 악화를 예방하려는 뜻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유류「쇼크」와 최근의 일본경제가 무역수지의 적자국으로 반전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정부간 협력규모의 한계를 시사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량의 외자도입에 의해 급속한 성장을 시도하는 우리 개발정책의 기조가 조정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일본자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기는 곤란할 것이며, 일본의 대한경협 방침이 바뀐데 따라 오히려 정부간 협의자세는 더 불리해질 가능성조차 없지 않다.
한나라 경제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서는 이같은 의존성 탈피야말로 그 첫째번 전제조건이 되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야말로 비록 속도는 늦더라도 자주적인 역량을 총집결시켜 대외적인 여건변화를 능히 극복하는 저력을 배양할 때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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