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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문학-강은교(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년 1월「시문학」지에 발표된 두 편의 시,『사랑법』과『물의 꿈』은 시인 강은교씨의 새로운 면을 알리는「새해의 수확」으로서 주목을 끌었었다.『떠나고 싶은 자/떠나게 하고/잠들고 싶은 자/잠들게 하고/그리고도 남는 시간은/침묵할 것.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그대 등뒤에 있다.』(『사랑법』)
그의 성숙도가 투명하게 전해오는 이 시들은 바로 작가 자신 죽음의 문턱을 오르내린 대수술을 겪고 처음으로 다시 땅을 딛고 남들과 말을 나누기 시작하던 무렵에 씌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반갑게 평가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1년 동안 잡지와 신문, 동인지에 발표한 그의 20여 편의 시들은 그 때마다 그의 독특한 시의 세계를 전해주었고 계속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것임엔 틀림없다.
『강은교씨에게 있어서는 금년의 시들이 자기 세계를 갖는 어떤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황동규씨(시인·평론가)는 시인 강은교씨의 전환점을 주목했다. 또한 김주연씨(문학평론가)는『한국의 전통적인 정서를 현대적 감각으로 옮겨 놓은 그의 새로운 조사법』을 평가했다.
이제 그의 시들은「해방동이」라든가「여류」라는 통속적인「타이틀」을 뛰어넘게끔 만들었다.
-오늘 같은 때 우리 같은 상황에서 과연 시를 쓴다, 문학을 한다는 뜻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지난번 한국을 다녀간「피히트」교수의 말을 그대로 옮기고 싶다. 지식인은 사회의 체온계로 건강한 사회에선 무용하지만, 병든 사회에선 예민한 반응을 한다는 말은 바로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왜 내가 시를 쓰는가 하는 물음엔 나도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시인을 가리켜「예언자적 역할」이라거나「진리의 증언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나의 경우 시를 쓴다는 것은 그것이 어느 선에서 출발하든 불행한 역사에의 헌신이라고 믿고 있다. 좀 더 국소화 시킨다면 불행한 언어, 닳아져 가는 언어에의 봉사라는 자각도 포함된다.』
강은교씨는 68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당선함로써 문단에「데뷔」했다. 당시 연세대 영문과 4학년생이었던 그는 시『순례자의 잠』당선 소감에서『다만 목까지 빠지는 어둠 속에서 발부리에 걸리는 것만을 겨우 짐작하며 조심히 기다릴 뿐, 내시는 그 어둠의 깊이이고 다시 밝고 싶은 희망』이라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시인이「헌신」을 할 수 있는 길, 다시 말해 독자와의 만남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한마디로 저항정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것은 시대의식의 인식과 표현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이러한 역사의식이야말로 독자와 시인간의 공동인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결국 이러한 공통인자에 의해 영원한 보편성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에게 있어 썩은 정신(타협을 예로 들었다)은 가장 반시적이 아니겠는가.』
71년 그는 그의 첫 시집『허무집』을 발간했다.
그의 시 세계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허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강은교씨에게 있어 허무의 뜻은 완전히 동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자신은 말한다. 염세가 아닌 생의 완성점으로서의 허무를 뜻하고 있다.
누군가 그의 시를 가리켜「허무의 극복」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시는 언제나 허무의 도달을 향하고 있다고 했다.
시인은 많으나 시는 없다는 말이라든지「추상화보다 더 멀어져 가는 난해한 시」라는 이야기들을 주변에서 들을 때, 그는 거듭, 오늘의 시(문학 전반에 걸쳐)가 한 작가의 자기극복에서 끝나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단이라는 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그는 현재 잡지사에 나가는 직장인으로, 한 살짜리 딸의 어머니로, 그리고 한 아내로서의 각기 힘든 역할 때문에 바쁘게 지내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상징적으로 보면 시인을 대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시를 쓸 때만 시인인 사람, 시를 쓸 때도 시인이 아닌 사람, 항상 시인인 사람.「언제나 시인인 사람」은 어떤 시대 어느 상황에서도 항상 필요한 사람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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