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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잘」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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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파이잘·이븐·압둘·아지즈·알·사우드」-, 외기조차 힘든 이 긴 이름의 주인공은「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다. 6백60억「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이 나라는 중동 산유국 중에서 석유의 종주국 노릇을 하고 있다.
현재의 추세로는 멀지 않아「사우디아라비아」는「이란」과 함께 세계 석유 공급의 4분의1을 생산하게 된다. 지금「에너지」위기 속에서 세계인들이「파이잘」왕의 일거수일투족에 희비일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머리엔 백색의「로브」를 뒤집어쓰고, 이마엔 금사로 짠「헤드밴드」를 두르고 있는 모습은 이제 누구에게나 인상적이다. 그는 5백만 백성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유명한 선왕「이븐·사우드」왕의 3남. 1906년「리야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서 사막의 전장에 종군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19세엔 군대를 지휘, 1925년12월「헤리스」왕국의 공략에서 승리로 이끈 전공도 있다. 1932년에「이븐·사우드」왕은「파이잘」을 외무대신으로 임명, 1945년엔「샌프런시스코」에서 열린 국련창립 총회에「사우디아라비아」를 대표해서 참석했었다.
1953년「이븐·사우드」가 서거하자, 어머니가 다른「파이잘」의 형「사우드」가 국왕이 되었다. 「파이잘」은 그의 밑에서 수상에 임명되었다. 「사우드」왕은 이름난「플레이보이」로 낭비벽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계의 보석이 그를 따라서 움직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궁전을 새로 짓는가 하면「캐딜락」수집을 일상의 낙으로 알며, 미녀를 수 없이 거느리고 살았다. 「사우드」가「유럽」여행을 떠날 때는 무려 수10억「달러」를 갖고 다녔다고 한다. 차 한잔 마시고 6백「달러」의「팁」을 준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파이잘」은 이복형의 이와 같은 낭비벽에 저항, 수상을 사임하고 외무대신에 머물렀다. 2년 후 다시 수상이 되긴 했지만, 형의 낭비생활은 끝이 나지 않았다. 나라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다. 왕족은 더 참다못해 그의 권력을 박탈하고「파이잘」로 하여금, 섭정을 하게 했다. 1964년11월2일「사우드」는 드디어 퇴임하고「파이잘」이 국왕에 즉위했다.
「파이잘」은 당시 5천명의 왕족이 연간 5억「달러」의 석유수입을 독점해서 쓰던 것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는 국민소득의 5%만 자신의 몫으로 억제했다. 「파이잘」은 또 외국차관을 모두 갚고 10억「달러」이상의 금 외화준비를 축적, 건전한 통화로 국가재정을 안정시켰다.
「파이잘」은 즉위 몇 년만에 전국에 1백 여개의 학교를 세워 오늘날엔 1천4백 여교에 이르게 되었다. 남녀평등의 교육 실시, 도로포장, 병원건설 등은 명실공히 근대화의 상징이다. 오늘날 그가 세계를 향해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은 이런 자신의 도덕적 덕성의 힘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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