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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에너지」동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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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3년은 「마호멧」의 후예들이 「사라센」제국이래 실로 1천년만에 세계의 질서를 뒤흔들어놓은 해였다.
「코란」과 칼 대신 석유로 무장한 「아랍」은 북을 울린지 두 달도 채 안되어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영국 등 EC제국과 일본을 굴복시켰다.
「아랍」산유국들이 불지른 「에너지」동란의 과중에서 버티고있는 나라는 풍부한 자체자원을 갖고있는 미국뿐이고 그 나머지는 산유국들의 「제스처」만 보고도 백기를 들었던 것이다.
공장이 멈추고 자동차가 서고 옷감에서 조미료에 이르기까지 3백19종에 달한다는 각종 원료가 나오지 않는 마당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맹목적인 공업화에 반성>
이번 석유파동이 이토록 충격적인 것은 석유는 「메이저」에 의해 항상 값싸게 충분히 공급된다는 뿌리깊은 기성관념에 가격인사와 물량소멸이라는 이중공세가 동시에 작렬했기 때문이다. 60년대만 해도 공급과잉으로 「바이어스·마키트」이었던 원유가 70년대에 들어 「셀러즈·마키트」로 전환한데 대한 반작용적 충격이 큰 것이다.
석유생산활동에 대한 산유국들의 참여추세를 결정적으로 기울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준 이번 석유파동은 제3세계의 군소국가들에 자원민족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이와 같은 가능성은 남북문제에 새로운 요인을 주입했으며, 유한한 세계자원을 어떻게 인류공익을 위해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주었다.
석유동란이 뒤늦게나마 인식시켜준 자원의 유한성은 공해문제와 함께 맹목적인 공업화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마련해준 셈이다.

<일본경제의 사활과 직결>
통상적 방법이 미흡할 때 비상수단에 호소하는 것은 미국이 금년 들어 농산물과 고철의 금수 조처에서 선례를 남긴바 있다.
무역적자누적과 「달러」가치의 하락에 시달려온 미국은 일본·EC 등에 협조를 요청하다 못해 전략물자의 금수라는 실력행사를 했다. 이 때문에 일본·EC 등은 미국에 오히려 식량을 팔아줄 것을 애원하게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제수지호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아랍」산유국도 그들의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원유공급가를 물경 60%나 인상하고 공급량을 9월을 기준으로 매월5%씩 삭감하는 비상수단을 썼다.
9월 비 5%씩 원유공급을 줄이면 12월엔 무려 28%나 삭감된다. 원유삭감도 「아랍」지지도에 따라 미·「네덜란드」는 전면금수, 영·불은 0%, 일본 등 중립국은 30∼35%씩 차별적용 하고있다. 석유무기화의 실효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서다. 「아랍」산유국은 원유를 감산해도 공시가를 높였으므로 석유수입엔 별지장이 없으며 현「아랍」의 경제력으론 50%까지 삭감해도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석유파동에서 미국이 주과녁이 되어있지만 그 피해는 상대적으로 낮다. 또 미국경제의 잠재력으론 이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으며 「아랍」에 대한 경제적 대응조치도 할 능력을 갖고있다. 「아랍」은 미국의 식량과 경제원조를 계속 필요로 한다.
석유파동으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나라는 엉뚱하게도 일본이었다. 미국이 1차 「에너지」중 「아랍」산원유비중이 2·3%인데 반해 일본은 60%나 되기 때문에 원유삭감은 일본에 대해 사활에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때문에 이번 석유파동은 미무역적자누증의 주인이며 그 동안의 국제통화 및 통상협상에서 만족한 양보를 않고 있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아랍」의 반반을 유도하고 그 반동을 을 일본역습에 「타임리」하게 이용했다는 추측도 나오고있다.

<고도성장 추진력 둔화도>
사실 지난번 미농산물 금수와 이번 석유「쇼크」로 일본외자의 눈덩이는 무너지고있으며 세계에 경이와 위협을 준 고도성장추진력의 둔화도 불가피한 실정이다.
세계산유량의 51·1%나 되는 중동산원유의 감산은 세계「에너지」위기로 직결된다. 「에너지」위기는 생산을 위축시켜 가뜩이나 심각한 물자부족사태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벌써부터 「오일·인플레」라는 물가상승 속의 불황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원유삭감이 계속된다면 세계경제는 다시 한번 「스태그플레이션」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석유파동전만 하더라도 74년 세계경기는 73년의 과열에서 점진적 진정으로 연착륙할 것으로 전망되었으나 최근엔 불황으로의 급추락설이 강하다.
심각한 불황은 각국의 보호정책을 자극한다. 보호장벽이 높이 쌓이고 모처럼 실마리가 풀리고있는 국제통화·통상체제개혁도 원점으로 돌아갈지 모른다. 약육강식과 무질서·혼란이 재현되는 것이다. 이런 최악의 사태는 기존 강대세력은 물론 「아랍」산유국에도 소망스러운게 아니다.

<산유국, 단계적 해제 밝혀>
때문에 「아랍」산유국도 세계경제를 파국으로 이끌 만큼 감산을 높이고 장기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원유삭감율이 30%를 넘지 못할 것이며, 명년 상반기까진 어떤 형태로든 석유파동은 일단 수습되리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OPEC 11개국은 이미 「이스라엘」이 「아랍」영토에서 철수한다는 것이 보장되면 원유금수·감산 등 석유무기화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밝히고있다.
석유파동이 명년 상반기 중에 수습된다하더라도 그것이 남긴 여파는 오래갈 것이다.
우선 근본적으로 석유는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라는 고정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까지 석유의 무제한사용을 전제로 확대팽창으로 치닫던 각국의 성장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체제의 수정과 새 대체「에너지」원의 개발이 절실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다.
석유의 고가화에 마라 기존경제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것이다. 금년의 농산물·석유파동은 자원보유국의 지위를 크게 높여주었다.
이는 농·공산품 완제품과 자원간의 기존교역조건을 변화시켜 부의 흐름을 바꿀 것이다. 성장잠재력에도 변화가 일어날것이다. 금년의 농산물·원유파동의 위력은 원목·원모·원당·고무 등 주요자원보유국에 같은 행동을 취하도록 자극할 가능성이 많다.
자원 「내셔널리즘」의 고조는 충분히 예견될 수 있다.

<새「에너지」개발 힘써야>
물론 이런 자원국의 「파워」가 당장 기존경제력의 판도를 뒤바꾸지는 못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유국이 보유하는 「오일·달러」는 이미 국제 금융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있으며 80년엔 「오일·달러」가 1천억「달러」에 달해 세계경기를 주름잡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있다.
비록 제한된 행동반경이긴 하지만 이번 석유파동은 질서의 붕괴와 신 세력의 부상을 알리고 또 고정관념의 탈피를 재촉하는 실감 있는 「팡파르」라 할 것이다. <최우석기자>

<차례>
①프롤로그
②동맹관계의 재조정
③에너지 동란
④제3세계의 부상
⑤키신저의 외교무대
⑥현대자본주의의 시련
⑦변칙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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