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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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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영·불 해협 사이에 한 점으로 나타난 「저지」(Jersey)섬이 있다. 얼른 보기엔 그것은 「프랑스」영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 섬은 「잉글랜드」와는 아득히 외떨어져 있으며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바짝 붙어있는 것이다.
엄격히 말하면 「프랑스」의 「코탕텡」반도 서쪽에서 불과 12「마일」밖에 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다. 그러나 영국령 「웨이머드」에선 무려 1백「마일」이나 떨어져있다. 넓이는 44·87평방「마일」.
물론 모든 영토가 지구상의 원근에 따라 결정되는 젓은 아니지만, 「저지」섬이 영령인 것은 좀 이상하다. 오늘날 이곳은 영국의 관광명소로 유명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당연히 이 섬의 영유권문제로 다투었다. 오랫동안을 두고 그 시비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은 국제재판에 회부되었다. 양국은 방증자료들을 앞을 다투어 제시했다. 판결은 영국령으로 내렸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앞서 이 섬의 주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인 기록을 갖고있었다. 지정학적으로 마땅히 「프랑스」영이 될만하지만, 「프랑스」는 그런 방증에 약했다.
백령도는 「저지」섬의 경우와 같이 상황이 물론 같지 않다. 영·불의 관계와 남·북한의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휴전이 성립된 지 20년도 지난 지금에 와서 북한이 새삼 백령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마치 그것은 「저지」섬의 주민이 영국에 납세했던 「현실」을 무시하고 「프랑스」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이나 같은 논리이다. 백령도는 휴전이후 엄연히 우리의 정치현실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백령도는 황해도 장산곶 남쪽38도선 바로 끝에 위치한다. 넓이는 47평방㎞. 합병 전에는 장연군에 속했으나 합병 후엔 옹진군에 편입되었었다. 하지만 한반도는 해방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었으며 동란과 같은 전쟁도 겪었다. 오늘의 남과 북은 그 동란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분계를 이루고 있다.
새삼 이 섬을 사이에 놓고 남북이 긴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시대적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것이며, 또 분쟁을 유발할 새로운 상황도 없다.
가정이지만, 이 섬을 놓고 대결할 소지는 얼마나 있을까. 그것은 60년대 초 「쿠바」사태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미국과 소련은 「브링크먼쉽」(일촉즉발)의 위기를 대결 아닌 양보와 타협으로 극복했다. 이것은 그후 동서의 대결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의 선례가 되고있다.
오늘의 북한은 과연 그런 상황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의 동서세계가 지향하는 탈「대립」의 논리는 바로 모든 위기의 한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한반도도 그런 상황의 바깥에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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