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날씨와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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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쟁은 항상 동 시대의 가장 발달된 첨단무기와 함께 치러진다. 심리전 차원에서도 첨단 무기의 위력은 요란하게 선전되고 개전(開戰)이 되면 그 위력은 확대 재생산된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가 꼭 이런 무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군의 사기(士氣)나 전쟁의 명분, 날씨 등도 승패를 결정짓는 또다른 요소다.

유럽 역사에 큰 여파를 미친 나폴레옹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이 전쟁은 처음에는 프랑스혁명을 방위하는 성격의, '봉건 타파를 위한 자유.해방 전쟁'이었지만 나중엔 '변질된 내셔널리즘적 성격'을 가졌다. 이 전쟁의 또다른 이름이 제 2차 백년전쟁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전쟁 명분 못지 않게 나폴레옹의 부침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날씨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는 군 장비.사기에 있어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나폴레옹군을 궤멸시켰다. 동장군(冬將軍)이 이끄는 한파(寒波)가 도움을 주었던 것이다.

히틀러의 소련 침공 때도 마찬가지였다. 최강의 기갑부대와 발달된 무기를 보유한 히틀러는 나폴레옹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면밀한 기상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6월 말에 출병해 10주 동안의 속전속결 작전으로 소련군을 궤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출병(出兵)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6월 22일은 1백29년 전 나폴레옹의 러시아 출병일과 같은 날이었다. 출병 초기 독일군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해 9월부터 찾아온 이상저온과 10월 한파의 도움으로 전력을 재정비했고 12월 6일 동장군(冬將軍)과 함께 대반격전을 펼쳐 독일군을 궤멸 했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점령으로 시작된 걸프전쟁 때도 군의 사기, 첨단무기와 함께 날씨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이라크군은 장비.전략뿐 아니라 쿠웨이트를 먼저 침공했다는 점에서 명분마저 없었다.

반격작전이 개시된 91년 1월 이라크 상공은 구름의 양이 40%에 이를 정도로 14년 만에 최악의 날씨였다. 그러나 영국 공군 기상정보대가 수퍼컴퓨터를 활용한 정확한 기상정보를 제공해 날씨의 심술을 극복했다.

13년 만에 다시 제2차 걸프전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공격자의 명분이 과거처럼 강하지 못하다. 군의 사기나 첨단무기는 어떤지 모르지만 명분만큼은 유엔의 승인을 장담하지 못할 만큼 취약하다. 과연 이번 전쟁에서 날씨는 누구의 편이 될까.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