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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유엔」이후의 한국문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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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1월20일「유엔」총회 정치위원회는 의장명의로 한국문제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내용인즉 ①「7·4공동성명」발표에 만족하며 ②남북한의 대화와 교류를 촉진하며 ③「언커크」를 즉각 해체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문제 토의는 표결 없이 종결을 지어 놓게 되었는데, 내주총회는 이 결의안을 공식으로 채택하게 된다.

<핵심피한 유엔결의안>
금년「유엔」총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내놓은 결의안의 골자는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었다.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내놓은 결의안의 골자는「유엔」군의 해체 및 모든 외군의 철수였다. 정치위 결의안은 이 두 개안의 핵심을 피하면서 쌍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점만을 내용으로 담게 된 것이다.
불과 주여전 까지만 하더라도 두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표결이 불가피해 보이던 한국문제가, 쌍방간의 교섭으로 극적인 타협을 보게된 근본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유엔」가입문제 및 한국안보에 직결되는「유엔」군의 해체, 외군 철수의 문제는 공히 안보리의 소관사항이다. 때문에 총회에서 어느 안이 다수결로 채택된다 하더라도, 안보리상임이사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한 아무런 실효성도 못 가진다.
총회를 통과해도 실효성이 없는 문제를 조상에 놓고「유엔」총회가 갑론을박의 설전을 벌이게 되면 동서냉전은 재연될 것이다. 냉전의 재연은 모처럼 성숙되어 가는 대국간의 평화공존 경향에 찬물을 끼얹을뿐더러 오히려 문제해결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둘째, 한국문제를「유엔」에서의 동서냉전의 도구로 또다시 사용하게 되면, 남북한이 민족자결 정신에 입각하여 관계를 개선하려던 기운이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셋째, 남북한 관계는 국제권력정치상 배경으로 보면, 미·소 관계의 일환인 동시에 미·중공 관계의 일환이기도 하다. 미국은 물론, 소련도 중공도 한국문제를 해결코자 현상타파의 위험한 모험을 하다가 미·소간 혹은 미·중공간 평화공존경향에 금이 가기를 원치 않는다.

<각본은 키·주 회담서>
그렇다면 3대국 공히 한반도 사태를 현상 동결시켜놓고 거기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제를 남북한대화에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정치위 결의안은 본질적으로 보아 남북한분단의 현상동결 시인인 것이다.
상기 결의안의 제출과 채택을 표면상으로는 화란과「알제리」사이의 흥정의 결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 「표결 없는 타협안」에 관한 의견합치는 11월 중순에 있었던「키신저」-주은래 회담에서 이루어졌고, 「유엔」총회는 그 각본에 따라 연출했다고 봄이 솔직하다. 어째서 한국문제에 관한 막후협상에 미국은 소련대신 중공을 택했을까.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반드시 강력히 지지하고 있지 않았던 데다가, 적어도 오늘현재에 있어서는 중공이 소련보다 더 강한 대 북한영향력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정치위 결의안의 채택은 한국문제를「유엔」에서 탈피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4반세기를 두고「유엔」총회가 실효성 없는 논쟁을 벌이다가 그 논쟁의 귀결이 어떻게 될까해서 우리가「대 유엔 외교」라 해 가지고 신경을 날카로이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문제의 탈 「유엔」은 분명히 속시원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안도의 숨을 쉬기에는 아직도 시기상조다. 왜냐? 북한이나 이를 동조하는 국가들이「유엔」군의 해체, 모든 외군의 철수를「유엔」내외를 통해서 계속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군사를 해체·철수시킬 수 없다는 논의 대의명분은「유엔」군사의 해체·철수가 「유엔」군사령관명의로·조인된 휴전협정의 휴전유지기구를 망가뜨린다는데 있다. 그러나「언커크」를 해체하면서「유엔」군사만 존속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어딘가 논리적으로 석연치 못한 면이 있다.

<한반도정세 불안여전>
이「딜레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의 종결조치를 서둘러야 한다. 한국전쟁은 전후 처리과정에 있어서 두개의 신기록을 남겼다. 그 하나는 휴전협정만 맺고 평화조약을 맺지 않은 채 20년을 끌어왔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면전쟁이 재개되지 않았음은 물론, 대규모의 무력충돌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까닭으로 한반도는 아직도「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에 놓여있다. 이런 사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안한 것이고 남북간의 엄중한 적대적 대립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기막힌 불안동요 상태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부동케 하기 위해서는 휴전협정에 대신하는 평화조약을 맺도록 해야한다. 무슨 방법으로 평화조약체결을 서두를 수 있겠는가?
첫째는 지금 재개의 움직임을 보이고있는 남북대화를 진전시켜 비단 대립의 긴장을 해소 할뿐만 아니라 남북한간 평화조약의 체결을 서두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국가(연합국 측16, 공산 측2)들이 모여서 강화회의를 여는 것이다. 여기서 만약 강화가 성립되면 한동안 북한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은 제외 당하게 된다. 소련이 동의치 않은 평화조약은 그 실행을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54년「제네바」회담당시 참가했던 국가는 빠짐없이 이 회의에 참가토록 함이 마땅할 것이다.

<남북화해「무드」가 우선>
상기 두개 방안 중 어느 것을 채택하건 간에 평화조약체결에 있어서 핵심적인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따라서 남북한간에 화해「무드」가 성립되지 않는 한 평화조약에의 접근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민족 자신이 평화조약체결을 외면하고, 이 문제를 강대국이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 밑에 방임해 둘 수는 없다. 심히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는 한국문제해결을 남북대화에 기대하는 국제동향의 현실을 에누리없이 직시하면서 난 문제에 과감히 도전하는 용기부터 가다듬어 나가야 한다.

<저자세 취할 필요 없어>
남북대화 재개의 움직임으로 말하면 서울 측이 재개를 촉구하기 위해 베푼 관용을, 평양 측은 마치 대화구걸처럼 취급하고있기 때문에 평양 측이 재개조건을 근본적으로 시정치 않는 한 재개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국제정세의 움직임으로 보아 대화재개의 필요를 절실히 느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필요를 충족키 위해 저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공산당은 우리가 저자세를 취하면 취할수록 서울 측에 무슨 약점이 있는 줄 알고 더한층의 양보를 강요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이 믿는 단 하나의 신은 힘의 우위뿐이다.
우리가 대화재개에 필요한 힘의 뒷받침을 튼튼히 하고, 의연한 자세를 취하면서 민족적 양심의 명령에 따라 소신대로 행동코자 한다면 공산 측은 조만간 대화에 응하게 될 것이다. 긴장풀이도, 남북간 평화공존 관계의 구축도, 평화통일도, 모두 우리민족의 자결에 맡겨져 있는 것이 오늘날 한반도 정세의 기본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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