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대신 「대화」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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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엔」총회의 한국문제 토의는 동서 양진영의 타협으로 표결이란 정면 대결 없이 막을 내리게 됐다. 「키신저」 미국무장관이 지난 9월 『조용한 한국문제 토의』를 제창한 이래 여러 갈래로 모색 됐던 한국문제에 대한 타협은 20일 하오「네덜란드」와 「알제리」의 막후 절충 성공으로 표결 없는 토론만으로 끝을 맺었다. ①7·4남북성명 정신의 재확인 ②남북대화의 계속과 다방면의 교류와 협조 촉구 ③「언커크」해체 등 서방과 공산 양측의 결의안중 공동되는 부분만 살리고 「유엔」동시가입·「유엔」군사해체 등 대립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은 채 넘어갔다.
이번 타협의 가장 큰 의의는 한국문제를 매년 「유엔」총회에서 다루던 관행을 지양할 중요 계기가 마련됐다는 사실이다. 매년 보고서를 내던 「언커크」가 해체되고 동서간의 합의에 언제, 한국문제를 「유엔」에서 다룬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한국문제와 「유엔」총회의 자동적 연결은 일단 끊어졌다.
외무당국자들은 승산을 가지면서도 표결 회피를 추구한 이유로 표결을 통해 한쪽이 이기면 이를 만회하기 위해 또 다시「유엔」총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 순환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사실 어느쪽이 총회에서이기든 대립되는 쟁점인 동시 가입과 「유엔」군 철수 문제는 안보리의 전관 사항이기 때문에 구속적 시행력이 없다. 올해 「유엔」총회의 한국문제 토의 경과는 어느 때보다 타협적이었다. 운영위에서의 단일 의제 채택, 정치위의 남북한대표 무조건 동시 초청이 모두 양측의 타협으로 조용히 처리 됐다.
이러한 타협의 분위기는 동서간에 대립을 피하려는 국제적 「무드」의 반영이다. 남북한을 뒷받침하는 강대국들은 이일로 해서 그들의 기본적 「데탕트」에 작은 손상이나마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국문제로 인한 정면 대결을 피하려는 동서간의 최초의 합의는 「키신저」미국무장관의 중공 지도자와의 회담에서 이뤄졌다. 한·미간에는 이미 지난 7월 「로저즈」방한 때 이런 가능성을 모색하기로 합의했었다. 공산측에 대한 중공의 설득은 북한 「알제리」및 그들의 공동 제안국 순으로 진행됐으며 소련이 마지막으로 이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처음 「유엔」무대에 나선 북한은 「유엔」을 그들의 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생각 때문인지 당초에는 타협 움직임에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지지를 받기 힘든 대세이기 때문에 최대 후견자 중공의 강력한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중공이 북한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미·중공회담에서 「유엔」군사의 장래와 그 대안 문제에 대한 어떤 방향이 설정되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렇게 표결 회피의 배경에는 상호표대결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을 갖기 어려운 기본 바탕이 깔려 있다. 현재 한국문제에 대한 「유엔」회원국들의 태도는 거의 비슷하게 3분되어 있다. 1백 35개 회원국 중 약 3분의 1씩이 서방측 지지, 공산측 지지, 기권으로 분석됐던 것이다. 우리가 공산측에 비해 약간 유리하다고는 하나 먼저 표결될 공산측 결의안을 패배시킬 「마진」5표 정도였다.
특히 「튀니지」등 중립적인 비동맹국들이 별도의 중간적 결의안을 제출했던 만큼 중립적 기권표를 양측이 지지로 끌어들이기는 더욱 어려운 입장이었다.
최후 순간까지 타협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북한이 표대결에서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었다면 표결 회피 종용을 받아들였으리라고는 보기 힘든다.
◇한국문제 처리경과 ▲9월 10일 서방·공산 양측 결의안 「유엔」사무국 제출 ▲20일 운영위, 한국문제에 관한 안건을 1개로 통합 정치위 배당 ▲21일 총회본회의, 운영위 권고 승인 ▲10월 1일 정치위, 남북한 대표 무조건 동시초청 결의 ▲11월 14일 정치위 한국문제 토의 개시, 이종목 북한부외상 연설 ▲15일 김용식 외무장관 연설 ▲20일 표결 회피 합의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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