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탐사+] 전 남편 납치·살해 사건 전말…청부범죄 실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앵커]

지난 4일, 문화계의 주목을 받던 한 공연예술가가 대낮에 납치 살해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는데요. 피아니스트인 전 부인이 범인으로 체포돼 충격을 줬습니다.

이 사건의 이면을 박상욱, 이지은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기자]

사진 속 남녀는 행복하게 웃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극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촉망 받는 공연예술가 채 모씨와 유학파 출신 피아니스트 이 모씨의 결혼식 사진입니다.

문화계 인사들의 축복을 받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던 두 사람은 3년 여만에 비극의 주인공이 됩니다.

결혼 2년 만에 찾아온 파경. 그리고 1년 뒤, 남편 채 씨는 세 명의 납치범에게 끌려 다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흉기에 찔려 살해됐고, 부인 이 씨는 이 범행을 사주한 장본인으로 지목돼 구속됐습니다.

1월 4일 오후 3시 50분쯤 중앙고속도로 하행선. 고속도로 순찰차가 시속 150km를 넘나들며 한 차량을 뒤쫓습니다.

대낮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숨막히는 추격전. 경찰은 공포탄까지 쏘면서 검거에 나섭니다.

달아나던 차량은 경찰 차들이 앞을 가로막자 결국 도주를 포기합니다.

경찰관들이 차를 포위한 뒤 체포를 시도합니다. 30분 동안 벌어진 추격전은 이렇게 끝납니다.

질주하던 차 안에는 흉기에 찔려 숨진 채 씨의 시신이 실려 있었습니다.

납치 살해 용의자 25살 이 모씨는 범행을 사주한 게 전 부인인 이 씨라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이 씨가 전 남편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벌인 범죄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주진화/용인 동부경찰서 형사과장 : (피의자들은) 이혼한 전 남편에게 결혼 후에 준 돈을 받아달라는 전화를 받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습니다.)]

납치범들이 채 씨로부터 1억원을 받아달라는 이 씨의 요청에 따라 범행을 했다고 진술했다는 겁니다.

사건 소식을 접한 문화계 인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합니다.

[최규환/배우 : 더욱 안타까운 건,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사고가 난 것에 대해서 저희들은 마음이 찢어지죠.]

[최정윤/배우 : (부부의 모습을 보셨는지?) 그럼요, 결혼식도 갔었고, 너무너무 축하했었고 그랬었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거기에 오빠를 뭔가 더 나쁜 사람처럼 몰아가는 이런 현상들이 (안타깝습니다.)]

[앵커]

이번 사건을 취재한 박상욱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 기자, 여성 피아니스트가 저런 끔찍한 청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게 믿기 힘든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이 여성이 평소 마찰이 있었던 전 남편 채 씨의 문제를 심부름센터와 상의하면서 일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조금 더 보시죠.

어이 없는 청부 범죄에 목숨을 잃은 예술가 채 씨. 문화계 인사들은 비통해 합니다.

[유인촌/전 문화부장관 : 굉장히 성격도 좋고, 정말 착하고, 아주 특출난, 감각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나중에 뭔가 정말 우리 이 쪽(예술계)으로 굉장히 큰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최정윤/배우 : 그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거든요 아직도…무궁무진했는데, 그런 사람이 떠났다는 것은 저희들에게도 그렇지만 예술계에서는 큰 인재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피아니스트인 전 부인 이모 씨는 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인 걸까. 두 사람은 결혼 이후 다툼이 잦아졌다고 합니다.

파국의 단계로 치달았고 약 1년 전, 공증서까지 작성하게 됩니다.

[채씨 외삼촌 : 이ㅇㅇ(전 부인)이 채ㅇㅇ(피해자)에게 7천만 원을 매월 70만 원 이상 씩 모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변제하라는 그런 내용이 있고….]

그런 내용이 있고 당시 나눈 두 사람의 실제 대화.

[채씨/녹취록(2012년 11월) : 왜 끝까지 기만을 하니? 자기야.]

[이씨/녹취록(2012년 11월) : 나는 아무 것도 할 말이 없어. 내가 잘못했기 때문에.]

[채씨/녹취록(2012년 11월) : 법원 갈 일이 뭐 있나. 우리가 (공증)사무실에 가자.]

[이씨/녹취록(2012년 11월) : 아무 데나 가면 되나요?]

그리고 공증 사무실로 이동하는 두 사람.

[이씨/녹취록(2012년 11월) : 공증 좀 하러 왔어요. (공증이요? 어떤 공증이세요?)]

[채씨/녹취록(2012년 11월) : 그냥 위자료 같은….]

경찰은 이 공증서 내용으로 이씨가 일부 금액을 채씨에게 줬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끝날 것 같던 두 사람이 극단적 상황까지 오게 된 데 대해, 채 씨의 유족은 돈 때문만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채씨 작은누나 : 우리 집에서 뭐가 아쉬워서 아무 것도 없는 너한테 돈을 요구해? 그래놓고는 거꾸로 자기가 받을 돈이 있어서 그렇게 했다고….]

이 씨측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청부살해를 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이 씨 측 변호인 : 돈 문제도 아니고요, 사람을 죽이라 한 적도 없다는 거죠.]

결혼한 남녀 사이에 생겨난 불화와 갈등이 끔찍한 살인극으로 번진 건 이 씨가 심부름센터를 찾으면서부터입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 씨는 인터넷을 통해 심부름센터를 찾았습니다.

[이씨 측 변호인 : 심부름센터의 부탁 내용은 일반적인 얘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리고 납치극의 주범인 25살 이모 씨와 연결돼, 직접 만났습니다.

돈과 함께 그만 괴롭히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납치범 이 씨는 두 명을 더 끌여들여 범행 계획을 짭니다.

사건 당일 오전, 채 씨가 서울 봉천동의 한 카페에 나타났습니다.

납치범 이 씨 등이 카페를 통째로 빌린 뒤 영화제작사 관계자라고 속이고 채 씨를 불러낸 겁니다.

채 씨를 불러내는 방법은 전 부인 이 씨가 알려줬다고 합니다.

납치범들은 제작사 간부를 만나러 가자며 채 씨를 승용차에 태운 뒤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어서자 결박을 풀고 탈출을 시도한 채 씨는 납치범들에게 다시 붙잡힙니다.

이 때 비명소리를 들은 시민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추격이 시작됐지만, 이미 채 씨는 흉기에 찔려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앵커]

심부름센터가 저런 납치나 살인까지 대신 해주는 건가요.

[기자]

요즘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심부름센터가 난립한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저희 취재진이 심부름센터에 직접 문의를 해봤습니다. 이 내용, 함께 보시죠.

지난 9일 채 씨의 납치살해 피의자 세 명이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에 나타났습니다.

채 씨가 차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이들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살해된 장소입니다.

경찰 지시에 따라 납치범들이 범행을 재연하는 사이 현장이 소란스러워집니다.

[채 모씨 큰형 : 찔러! 돈, 내가 4억 줄테니까 너네들끼리 찔러!]

덤덤하게 현장검증을 하던 피의자들이 뭔가 중얼거리는 모습도 잡혔습니다.

심부름센터를 통해 들어온 범죄 의뢰를 서슴없이 저지른 이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이 받은 착수금은 180만원. 불과 180만원에 사람을 납치하고 살해까지 한 겁니다.

특히 범행을 모의할 당시 납치범들은 "최악의 경우에 살해해도 되느냐"고 얘기했지만 이 씨는 반대했다고 수사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정말로 심부름센터가 범죄까지 대행할까. 취재진은 인터넷에서 검색된 심부름센터에 접촉을 시도해봤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노숙자나 출소자를 시켜서 전치 4주 미만의 상해를 입혀 단순 벌금형이 나오는 정도로 해주겠다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술술 제시합니다.

대화가 진전되자 더 큰 범죄도 가능하다고 유인합니다.

우발 범죄를 가장해 일상 생활에 불편이 따르는 정도의 장애가 생기도록 해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심부름센터가 있는 한 이런 범죄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 : 불법적인 행위를 의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이점이 있죠. 그 외의 다양한 종류의 약속을 정하기 위한 오프라인 상의 작업을 하지 않아도 온라인 상에서 충분히 계약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심부름센터를 매개로 한 범죄는 무거운 처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박성재/변호사 : 불법 심부름을 의뢰한 경우, 의뢰한 사람과 불법 심부름을 실제로 행한 사람 모두가 처벌을 받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불법 심부름을 의뢰한 사람이 실제 행한 사람보다 더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전 남편을 노리고 심부름센터의 문을 두드린 피아니스트. 이런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것을 예상했든, 못했든, 무거운 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유망한 예술가 한 명을 잃었습니다.

[앵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흉악 범죄도 서슴지 않는 심부름센터에 대한 단속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Copyright by JTBC & Jcube Interactive. All Rights Reserved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