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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재미 교포 사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11월8일자 「워싱턴·포스트」지에 다음과 같은 보도가 실렸다한다. 『올해의 「워싱턴」지구 한인 회장 선거는 그 후보자가 5명으로 각각 선거 운동 본부를 차려 놓고 모금 「파티」·호별 방문 등 조직적인 득표 운동을 벌였다. 3개의 한국어 신문들도 이 선거운동에 휩쓸려 들어 이내 후보자들의 상호 비난의 집합체로 돼버렸다. 어느 후보자는 42명의 선거 운동원을 거느리기도 했다. 회장 선거는 뇌물과 「사보타지」등 더러운 책략이 개입된 추잡한 선거였다는 풍문이 파다했다』는 것이다.
또 『수년 전 불과 21명의 회원이 모여 사이좋게 회장을 뽑았던 한인 회장 선거가 이번에는 무려 1천5백 명의 회원이 모인 가운데 5명의 입후보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 과열한 상태를 자아낸 것은, 전임 회장이 본국 정부를 강력히 지지한 후3년짜리 지명 국회의원이 된 후부터 회장 자리의 성가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고도 덧붙였다.
해외에 있는 교민단체는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교포들의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수호·발전시키기 위한 임의 단체이다. 「워싱턴」지역 한인회도 그 예외일 수 없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임의단체에 가입했다하여 어떤 특권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가입·불 가입을 불문하고 미국에 사는 한인교포들이 모두 미국의 법 지배하에서 살고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한인 회장 선거는 되도록 이면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학식이나 덕망으로 보아 족히 교포사회를 대표할만한 원로급 인사를 무투표로 추대함이 이치에 합당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장 자리를 무슨 큰 벼슬자리나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여러 후보가 난립하여 상호비난을 일삼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심지어 「사보타지」행위를 하는 등, 추잡한 선거전을 벌였다는 것은 재미교포는 물론, 전체 한국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창피스러운 일이다. 우리 교포가 「워싱턴」에 살면서까지 나라 망신을 시키고, 수모를 자초하게 되었다는 것은 교포사회가 심히 분열되어 있고 또 한인들이 선거에 과열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당선하면 된다는 나쁜 버릇을 외국에 가서까지 유산치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해외교포보호 사업은 자금난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영 부진한 것이 실정이다. 이 같은 약점은 교포들의 높은 자각, 즉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외국에 나가서는 한인의 수치스런 꼴은 안보이겠다는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극복되어야 한다.
재미교포의 경우, 그 대다수는 미국의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은 우선 존경받는 미국시민이 되고, 다방면에 걸쳐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은연중 한민족의 실력을 미국 사회 안에서 인정받게 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국 정부의 교포사업도 해외에 나가 사는 한인들이 그 나라 사회에 자리잡아 안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한편, 조국에 대해서 스스로 우러나는 긍지와 애정을 느끼게 하는 후원자 역할을 하는데 그쳐야할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 사회가 사분 오열되어 내분을 거듭하고, 이번 「워싱턴」한인 회장 선거전의 경우처럼, 그 나라 신문의 빈축을 사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교포들 자신은 물론, 교포사업을 맡고 있는 당국도 깊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 남북한의 정치적 대결이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고 있는 이 판국에, 교포사회에 자주 내분을 일으키는 등 추태를 보임으로써 한국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사태에 대해 우리는 깊은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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