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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훈 “자리 연연하지 않아 … 명예 회복 후 퇴임하고 싶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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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호 06면

최정동 기자

신상훈(66·사진) 전 사장은 오히려 담담했다. 3년5개월간의 재판을 거친 끝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아 흥분할 법도 한데 차분한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간간이 비장함도 묻어났다. 그는 “이번 판결로 신한사태에서 누가 잘못했는지가 명백하게 가려졌다”며 “사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 길을 열어 줬다”고 말했다.

‘신한사태’ 2심 끝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신 전 사장은 “나는 결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며 “하지만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 위해 단 하루만이라도 신한으로 돌아가 명예롭게 퇴임사를 하고 나오고 싶다”고 말했다. 신한사태가 경영권을 놓고 벌인 내부 다툼으로만 세간에 알려진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자신은 일방적인 공격을 당하면서 가드를 올렸을 뿐인데도 되레 같이 공격에 나섰다고 비난받은 꼴이나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판결에 남다른 소감이 있을 텐데.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명백해졌다. 고소 자체가 없는 혐의를 조작해 만든 기획이라는 게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사법부가 신한사태는 애초에 있어서는 안 될 비정상적인 사건임을 판단해 준 것이다. 1, 2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너무 힘들었지만 사실을 바로잡아 줘 정말 기쁘다. 혐의 사실에 대한 판단 과정에선 95% 이상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 사실상 무죄로 끝났다. 물론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어 조심스럽다.”

 (신한사태 재판은 공소장과 증거자료만 1만3000쪽에 달하고 200여 명이 법정에 출두할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했다. 3년5개월 동안 1, 2심 모두 50차례나 공판이 열렸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이 라응찬 전 회장과 이백순 전 행장 주도로 신한은행이 신 전 사장을 고소하면서 시작됐지만 고소의 경위나 의도에 있어 매우 석연치 않은 사정이 엿보이고 고소 내용도 대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언급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계기될 것
-일부 유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선 책임을 느끼지 않는가.
 “비자금을 사용한 것은 사후에야 보고를 받은 사안이었다. 내가 (비자금을) 직접 쓰지 않았어도 왜 ‘도둑놈’을 못 막았느냐는 관리 책임을 물어 벌금을 부과했다. 은행이 피해를 본 2억1600만원을 법원에 공탁까지 했다. 관리 책임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에 가서 다시 한 번 해명하려 한다.”

 -신한사태의 당사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당사자가 아니라 피해자다. 그런데도 죄를 지었다며 3년여 동안 해명하라고 한 것이다. 갑자기 각본에 의해 직무정지가 되고 강요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퇴임사도 못하고 쫓기듯 나왔다. 당시 일본에서 주주총회가 열렸을 때엔 살인죄보다 심한 횡령·배임을 저질렀다는 비난까지 받을 정도였다. 이번 판결로 그런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 놓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사법부의 판단이 나왔으니 명예회복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명예회복이란 현직 복귀를 뜻하나.
 “일각에서 내가 판결 이후 사장직 복귀를 원하는 것처럼 알려졌는데, 이는 분명히 사실과 다르다. 나는 결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 경영진을 밀어내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잘못된 일의 시시비비를 가려 명예롭게 퇴임하게는 해 줘야 하지 않나. (신한금융에) 가서 하루가 되더라도 있다가 퇴임사는 하고 나오고 싶다. 당시 이사회에서 직무정지를 시켜 놓았는데, 그 상태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사이에 경영진이 바뀌었어도 우선 무죄를 인정한다면 직무정지 결정을 원상복귀해 줘야 하지 않나. 그동안의 월급은커녕 스톡옵션까지 묶여 있다. 며칠 전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과 만났다. 기대는 안 했지만 생각 차이가 크더라.”

 한동우 회장은 지난 9일 기자간담회에서 “신한사태와 관련된 모든 분이 겸허해지고 신한 브랜드 가치를 훼손한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명예회복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한 신 전 사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11일 다시 전화를 걸었다. 신 전 사장은 이날 일본 나라현에 있는 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 묘소를 찾아가 판결문을 읽고 재판 결과를 보고했다고 한다. 그는 “재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가려졌는데도 피해자에게 뭘 반성하라는 것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며 “내가 원하는 명예회복이란 과거의 잘못을 짚어 보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와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것처럼 자리를 달라거나 누구를 가려내 벌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과거의 잘못을 덮어 두고는 미래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이사회의 조치(직무정지)를 정상으로 돌려 놓고 퇴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돌이켜 보면 신한사태는 왜 일어났다고 보나.
 “라응찬 전 회장은 후발 은행인 신한은행을 선도 은행으로 만들어 온 공이 있는 분이다. 그와는 30여 년 가까이 동고동락했다. 2008년 내가 산업은행 총재 후보로 거론될 때엔 라 전 회장이 요로에 “신상훈은 내 후계자이니 빼 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당시 라 전 회장에게 반기를 들거나 그 자리를 먼저 넘볼 이유가 없었다.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검찰 압수자료 중에서 밝혀진 것이지만 ‘퇴진 시나리오’가 이미 만들어져 있더라. 칭병을 이유로 사퇴한 뒤 해외 출국하도록 돼 있었다. 내가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 반격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시간을 많이 주면 안 되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나오더라. 당시 라 전 회장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실명제 위반 혐의로 중징계가 예상되자 후계구도를 놓고 마음이 급했던 몇몇 욕심 있는 사람들이 벌인 일로 생각한다. 이명박정부 실세인 영포라인이 부상할 때였던 만큼 내 출신 지역(전북 군산)에 대한 정치적인 배경이 있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그래도 그때 내 임기가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왜 그리 서두르면서 그런 무모한 일을 일으켰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하루가 되더라도 퇴임사는 하고 나와야”
-신한사태 직후 어떤 심정이었는지.
 “느닷없이 당하고 나니까 처음엔 황당하고 미칠 것 같았다. 하도 억울해 모든 걸 바쳐서라도 해명해야겠다고 각오했다.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새벽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많이 좋아졌다. 3년여에 걸친 재판 과정 동안 재정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내 주장을 설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친척에게 부당 대출을 해 줬다는 혐의를 반박하기 위해 집안 족보까지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속으로 ‘바보처럼 살아야지’ 하며 되새겼다.”

 -앞으로 신한은행 발전을 위해 들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은행 조직의 관점에서도 당시엔 자정능력·감사기능 등 내부 통제장치 자체가 깡그리 없어진 상황이었다. 거짓 주장에 대한 검증이나 견제 없이 최고경영진의 말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재판 결과를 놓고 보면 사실상 주주들을 속인 것이다.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잘 가려 똑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 한다. 조직의 신뢰에 상처를 입은 것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렇게 돼 버리니 이유가 어떻든 부끄럽고 후배들을 볼 낯이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출세 지상주의에 물든 일부 욕심 많은 당시의 보좌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의 잘못을 덮어 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닌 만큼 신한사태의 진상조사를 통해 무엇이 문제였는지 되짚어 보고 반성하는 게 필요하다.”

 -향후 계획은. 금융계로 돌아갈 생각이 있는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신한사태 당시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는다면 명예롭게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런 다음 젊은 후배들을 위한 길을 찾을 생각이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아직 남아 있다.
 “이사회에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결정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은행 측이 고소한 혐의가 항소심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로 선고가 난 만큼 양식 있는 조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정상적인 조치를 취해 주리라 믿는다.”

 신 전 사장은 신한사태 재판이 시작된 이후부터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의 벤처기업 38곳이 모여 만든 한국벤처금융포럼의 금융업계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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