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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파거점 간첩단적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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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중앙정보부는 25일 경제과학 심의회의 분석관 김장현(38·서울 서대문구 불광동28의4)과 공무원·교수·학생 등 54명이 관련된 「구라파거점 간첩단 사건」을 적발, 조사중이라고 발표했다. 김치열 중앙정보부차장은 이날 발표를 통해 이들 관련자들은 정부주요기관을 위시하여 학원 및 기타 주요기업기관에 있던 사람들로 대남적화통일혁명의 결정적시기에 연합전선을 형성할 상태에 있었으며 공무원이 24명, 대학교수가 7명, 회사 및 행원이 10명, 학생 6명, 기타 6명 등이라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관련자 중 김장현과 김촌명(40·농수산부 토목기사·서울서대문구 불광동380의17) 등 2명을 검찰에 구속송치 했으며, 건국대학교수 고재웅 등 17명은 불구속 입건했으나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으며, 미체포간첩을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전원은 경고를 한 뒤 불문에 붙이겠다고 밝혔다.
김치열 차장은 이 사건에 관련뢰어 조사를 받았던 서울법대의 최종길 교수(42)는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에 관련된 범행일체를 자백한 뒤 감시직원의 눈을 속여 변소창문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김 차장은 최 교수의 범행사실과 지난번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시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정보부 발표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간첩단은 「네덜란드」에 유학중이던 이재원(41·미체포)이 당시 북한의 동서 구라파 대남공작총책 이원찬에게 포섭되어 입북, 노동당에 입당하고 대남공작교육을 마친 뒤 화란·스위스·서독지역 공작책으로 임명되어 그 지역에 유학 또는 직무교육·교환교수 등으로 가는 한국의 「엘리트」급 인물에 접근, 사명을 주었다고 밝혔다.
중앙정보부는 이번 사건의 관련자가 54명에 이르고 있으나 구속된 2명과 미체포간첩을 제외한 나머지 전원을 관대히 다스리는 것은 이들 중 다수가 자책을 느껴 자수했거나 국가에 봉사할 능력이 인정되는 사람들로 계속적인 활동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차장은 이번 사건의 관련자 이외에 이와 같은 사정에 있는 범법자에 대해서는 오는 11월25일까지 자진출두 또는 서면으로 자수하면 전원구제, 불문에 붙일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재원(41·미체포·화란거점공작총책) 57년10월 서울공대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뒤 화란조선학연수차 유학, 58년10월 북한의 송백림 주재 구라파총책 이원찬에게 포섭되어 입북, 공작교육을 받고 60년부터 화란공작책의로 활동했다.
이는 60년부터67년까지 간첩으로 김장현(38) 이재문(33·미체포·이재원의동생) 김성수(38·미체포·서독「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과유학생) 최종길(42·서울법대교수·구속수사 중 사망) 등을 포섭, 동백림 또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북한에 보냈으며, 같은 기간 중 사회과학연구차 화란에 유학 중이던 건국대학교 교수 고재웅과 같은 목적의 유학생·공무원 등 48명에게 북한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노동신문·화보 등 간행물을 통한 사상교양과 남한적화통일전선에의 참여를 종용하는 등 약75만「달러」의 공작금을 뿌려 동조자를 모았다는 것.
이는 동백림사건이 적발되자 한때 동독으로 도피하였다가 70년5월에 다시 구두파로 침투, 화란에 기지를 두고 서독·「스위스」·불란서 등 구라파전역을 관장하는 동시 이 지역의 총책에 있다.
▲이재문(33·미체포·간첩단부책·이재원의 동생) 63년2월 서울대공대 졸업 후 친형 이재원의 지령에 따라 국내간첩 김장현과 접선, 김의 주선으로 화란에 건너간 뒤 7월 동백림을 거쳐 입북, 평양에서 간첩교양과 지령을 받고 화란에 돌아와 한국유학생을 대상으로 간첩활동, 70년7월 이후 서독으로 재침투 이재원 산하 부책으로 활동중이다.
▲김성수(38·미체포·연락책·서독「프랑크푸르트」대학철학과 유학생) 66년11월 국내간첩 김장현에게 포섭되어 유학을 가장, 서독에 건너가 이재원과 접선, 69년8월 평양에서 간첩교육과 지령을 받은 뒤 서독으로 돌아와 이재원조직의 연락책으로 72년6월과 73년3월 2차례에 걸쳐 일시 귀국하는 간호원을 통해 간첩 김장현에게 투쟁과업 및 당면 대한민국의 경제세부계획과 분석내용 등 산업과학 종합현황 등을 수집, 보고할 것을 지령했다.
▲김장현(38·구속·경제과학심의회의 분석관) 63년 4월부터 9월까지 화란체재기간 중 당시 서독유학생손모의 소개로 이재원에게 포섭되어 63년9월30일부터 11월27일까지 동백림에서 간첩교육을 받은 뒤 ▲경제과학분야에 관한 정보수집보고 ▲구라파유학생들을 파악보고 또는 소개하여 이재원에게 접선시켰다.
김은 63년11월30일 국내에 들어 온 뒤 서독유학생 김성수를 이재원에게 소개하여 간첩망원으로 포섭케 했으며 5차례에걸쳐 은어 서신연락을 했고 연락책 김성수에게 접선, 난수표를 받고 공적사업을 보고했다.
▲최종길(42·서울법대교수·구속수사 중 사망) 이재원과 인천중학교동기동창으로 57년5월 「스위스」 「취리히」대학유학 중 58년10월 중학동창이며 북한의 주불란서 공작총책인 함봉유(43)에 포섭된 뒤 60년6월초부터 약20일 동안 평양에서 간첩교육과 노동당에 입당한 뒤 공작금 2천「달러」를 받았고 61년11월 본국유학생들의 동태파악공작금으로 8백「달러」를 이재원으로부터 받았다.
최는 62년7월 귀국에 앞서 이재원으로부터 ▲서울대학교로 침투, 학원토대를 구축할 것과 ▲가정형편이 빈곤한 우수학생의 구라파유학을 추진할 것 등 지령을 받고 귀국, 62년10월부터 67년7월 사이 2차례에 걸쳐 이재원에게 약속한 은어로 사업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최는 지난 10월17일 중앙정보부에 검거되어 범행사실이 압수된 수첩과 편지 등에 의해 인정되자 이를 자백한 뒤 국내간첩조직망에 대한 여죄를 조사받던 중 변소에서 투신자살했다.
▲김촌명(40·구속·서울 서대문구 불광동380·농수산부토목기사) 66년10월 화란정부초청으로 「델프트」공과대학에 유학하면서 간첩 이재원과 40여회 접선.
67년7월 동백림사건 뒤 동독으로 도피한 이재원의 기숙사에 있던 북괴선전자료 등을 정리 귀국 후 그의 처에게 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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