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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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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신년모임에서 국제업무 경험이 많은 전문가 몇 분과 나라별 업무추진 스타일과 능력에 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현재 국제금융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한 분이 ‘단기간’에 낼 수 있는 업무 성과를 따질 때는 우리나라가 단연 최고라는 얘기를 했고 참석자 거의 모두가 이에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 국민 특유의 역동성, 순발력, 부지런함, 1등 의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자찬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일에서도 과연 탁월한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말문을 닫았다.

 지난해 말 정부는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중장기의 금융업 발전방향을 제시했다. 금융업의 질적 내실화와 가치 제고를 통해 실물경제의 활력 회복을 뒷받침하고 양질의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내용의 청사진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정부 당국이 금융서비스업에 제대로 접근하려 한다는 점에 환영을 했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제대로 꾸준히 추진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사실 10여 년 전인 2003년 말 정부는 이번 ‘강화 방안’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 포커스를 제시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이다. 그 내용은 너무 광범위해서 짧게 정리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를 금융거래의 중개와 결제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중심지인 금융허브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다만 런던이나 뉴욕과 같이 종합적인 금융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글로벌 금융허브를 만들기에는 우리 능력이 부치기 때문에 자산운용업 중심의 특화된 금융허브를 10년 내인 2012년 말까지 만들자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나름대로 여건과 현실을 고려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로드맵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이 정책은 실패했다. 현재 목표로 삼았던 세계 50대 자산운용사의 지역본부는 한 개도 들어와 있지 않다. 외국 은행 국내지점은 철수하거나 점포 축소 방침을 밝히고 있고,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는 국가 여유자금을 관리하는 중심축으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동안 정권교체도 있었고 글로벌 금융위기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단기에 강한 우리나라가 장기에는 약했다. 처음부터 달성이 쉽지 않은 그림이었는지 모르지만 계획만 근사하게 세워놓고 정작 실행단계에서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이 정말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2000년대 중반에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입장을 밝혔을 때 대부분 국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시장화·개방 정도가 낮고 금융구조·유연성도 부족한 금융 후진국이 과연 국제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투로 말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꾸준히 일관성 있게 위안화 무역결제 확대, 역외 위안화 시장 조성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고 유사시 손해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국과 통화스와프 계약도 늘려나갔다. 지난해 12월 로이터통신은 세계 무역금융 부문에서 위안화 비중이 8.7%로 증가해 6.6%의 유로화를 제치고 달러화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영국·홍콩·싱가포르·일본 등이 위안화 거래허브를 만들기 위해 중국과 협력관계를 늘리고자 노력 중이다.

 금융이 강해야 경제가 성공한다. 이번에 정부가 새로이 만든 ‘금융산업경쟁력 강화방안’은 긴 호흡으로 꾸준히 노력을 경주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 방안에 마침 ‘금융중심지 지속 조성’이라는 항목이 세부 목표로 들어가 있으므로 이미 수립한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도 차제에 다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채권시장 국제화, 주식시장·외환시장의 투명성과 거래효율성 제고, 동북아지역 특화 금융수요 개발, 해외 유수 금융기관 유치 및 국내 기관의 해외진출 활성화, 금융규제·감독·검사의 글로벌 스탠더드 도입 등 당시의 과제를 지금 다시 보아도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과 서비스업 강국으로의 여건 마련을 위한 금융산업 육성에 꼭 필요한 사항들이다. 과거의 실패 경험 때문에 혹은 계획이 너무 힘에 부친다는 현실감 때문에 이를 포기한다면 우리 경제의 위상 유지도 힘들고 결국 3류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장기적인 추진력에서도 1등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김익주 국제금융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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