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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4000억 유로 사상최대 부실자산 '땡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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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에 사상 최대의 부실자산 ‘땡처리’ 장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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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한국 등에서도 열렸던 장이다. 8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시중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새 기준에 따라 스스로 자산을 재평가하고 있다”며 “이 작업이 끝나는 대로 엄청난 부실자산이 매물로 쏟아져 나올 전망”이라고 전했다. 자산 재평가 작업은 유로존 18개국 은행들만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영국 등 유럽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는 지난해까지 이뤄진 재평가 작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이 적용된다”며 “그만큼 매물로 나올 부실자산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최근 보도했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올해 부실자산 처분 규모가 800억 유로(약 115조원) 정도로 보인다”고 최근 추정했다. 지난해보다 33% 정도 많은 규모다.

 ‘땡처리’가 올해로 다 끝나는 것도 아니다. 유럽 시중은행 금고엔 재정위기 탓에 천문학적인 부실자산이 쌓여 있다. 대체로 2조6000억 유로(약 3744조원) 정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 추정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더 엄격한 잣대를 채택하면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 가운데 4000억 유로(약 576조원)어치가 2018년까지 매물로 나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정도만으로도 사상 최대 부실자산 처리다. 자산 종류도 최고급 호텔에서 중견 제조업체까지 다양하다.

 로이터통신은 “아름다운 아드리아해 연안에 자리 잡은 크로아티아 5성급 호텔인 르메르디안레브 호텔이 곧 매물로 나올 예정”이라며 “하룻밤 700유로(약 100만원)를 내야 잘 수 있는 이 호텔은 오스트리아 시중은행에 5000만 유로를 갚지 못해 압류돼 있다”고 전했다.

 부실자산의 최대 매력은 값이 싸다는 점이다. 영국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지난해 부실자산을 처분하면서 액면 가격의 70%를 깎아줬다. 올해는 할인율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최고 95%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100만 유로짜리 자산을 단 5만 유로에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는 고전적인 투자원칙이 작동하는 시장이 오랜만에 열리는 셈이다.

 금융시장 ‘하이에나’들이 군침을 흘리는 건 당연하다. 바로 사모펀드 등이 설정한 벌처펀드(Vulture Fund)들이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미국 블랙스톤은 부실자산 인수를 위해 펀드를 만들어 33억 달러를 유치했다. 사모펀드 아폴로매니지먼트는 54억 달러의 ‘실탄’을 확보했다. 이들은 론스타의 성공을 재연하고 싶어 한다.

 론스타는 1990년대 후반 미국 대부조합(S&L) 사태 때 부실자산에 베팅해 3년 만에 700%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한국 외환위기 때엔 국내 은행이 넘긴 부실 채권을 사들여 짭짤한 고수익을 챙겼다. 특히 외환은행을 헐값에 사들여 4조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

 벌처펀드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인 미국에선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QE) 차원에서 모기지(장기 주택담보채권)를 대거 사들인 덕분에 모기지 채권 부실화 비율이 낮아서다. 로이터는 “유럽의 부실자산 처리가 앞으로 10년 안에 다시 볼 수 없는 최고의 사냥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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