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낙엽이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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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머리칼 희고 칠순만 되셨다뿐
청송같이 늙지 않고 사시던
당숙모께서 그만 이승을 뜨시다니
아니, 그게 정말인가.
우리 살던 바로 이웃집
장항서 후살이 온 상민이 어머니
마음 퍽 곱게 쓰고 사시던
그분마저 졸지에 승천하시고
가족들은 흩어져 썰렁하다니
원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저무는 신작로를 따라
자전거 뒤에 노을을 싣고 오던
삿갓재 면서기는 환갑이 올해고.
간재장터 옹기전 모퉁이
얼굴이 유독 희고 노래 잘하고
노상 업혀서 크던
됫술집 외동딸이 시집 가
배꽃 같은 딸을 둘이나 낳고.
아니, 벌써 그렇게 됐나.
어디서 후조처럼 들어와
등마루가 닳도록 머슴만 살던
박씨는 그새 집 사고 논 사고
아들은 서울 가서 출세를 하고.
아하, 그렇고 그런데 나는 무어람.
늦가을 낙엽이듯 고향 떠나와
뜬구름 잡고 살기 이십년
밀린 후문을 풍편에 들으며
문득 잊었던 나이를 생각해 내고
내 잔주름 헤아려 괴로왔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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