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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무기화」와 중동전 국제정치 역학 관계서 본 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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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석유위기가 한창 고조되고 있는 정점에서 중동전쟁이 터지고 중동의 「아랍」산유국이 석유를 무기화 하겠다고 나섬으로써 석유문제는 또 한번 전세계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석유는 단순한 기초「에너지」로서가 아니라 국제정치 역학관계에 끼여든 중요한 인자가 된 것이다.
『석유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면 근대병기보다 훨씬 위력이 있다.』이것은 서방 석유회사의 51%국유화를 단행한 「리비아」「가다피」의 말이다.

<미, 산유국과 밀착 시사>
중동의 석유매장량은 72년 말 현재 4백85억t으로 전세계공표확인매장량 9백9억t의 53·3%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 「에너지」의 중추역할을 담당한 석유의 힘을 감안할 때 「가다피」의 호언은 결코 공포가 아니다.
중동산유국들은 이 보고를 배경으로 그 동안 국제석유자본의 압력을 물리쳐 왔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저지하는데 이용해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잘」왕은 지난 6월 미국에 대해 현재의 중동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의 생산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었다.
또 막강한 자본력을 구가하던 국제석유자본도 중동각국의 자원「내셔널리즘」때문에 고전을 치르게되자 미국정부의 지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초 국제석유자본의 일원인「스탠더드·오일·캘리포니아」사는 『미국과 「아랍」제국의 화해를 지지한다. 중동의 석유는 서방제국에 있어 극히 중요하다. 미국은 「아랍」의 열망을 이해하고 「아랍」제정 부와 좀더 밀접한 관계를 가져야한다』고 공표,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중동석유 자원력은 이번 중동 전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중동전이 불붙기 시작한 직후부터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할 경우, 석유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석유무기화 논을 고창 해 왔다.
그리고 미국이 소련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에 무기공급을 시작하자 17일부터 산유국회의를 열어 석유무기화에 대해 논의할 것을 밝혔다.
72년 중 중동의 석유생산은 8억9천5백40만t은 전세계생산량 26억9백60만t의 34%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중동이 석유생산을 중지한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러나 「아랍」산유국이 대「이스라엘」전에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해서 석유무기화 논에 쉽게 합의점을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속단일지 모른다.
그 이유는 중동각국의 불협화음을 들 수 있다.
「리비아」의 「가다피」가 국유화 조치를 단행하자 가장 이익을 본 것은 「사우디아라비아」「파이잘」왕이었다.

<아랍제국의 융합 기대난>
「파이잘」국왕을 맹주로 한 「페르샤」만 온건파 대 산유국「그룹」(「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부다비」 등)은 「가다피」와 같은 과격파와는 그동안 대립된 상태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리비아」조치로 산유국의 상위시대를 힘들이지 않고 맞게 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노선은 보수적이며 친미적인 색채가 짙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란」 등은 석유에서 번 「달러」로 미국무기를 사들여 자국의 위치를 굳혀왔다.
중동산유국의 일부 군주제국가와 혁신적인 「아랍」제국과의 정치 제도상의 차이는 용이하게 융합될 수 없는 생리를 지니고 있다.
「가다피」가 석유를 정치적 무기로 이용하기를 외치면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실행한 적이 없다』고 고백한 것은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하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동산유국이 대「이스라엘」전이라는 공동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단결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때문에 서방석유 소비 국들은 예측 가능한 중동석유동향에 대비하여 그 대응책을 다각도로 모색하고있다.
이미 제2차 대전직후부터 서구강대국들은 세계 석유자원의 국제적 관리체제를 모색해왔다.
1941년 「루스벨트」「처칠」의 대서양 헌장은 미·영「앵글로색슨」이 주도하는 전후재건을 발표하고 1944년 영·미 석유협정을 조인했다. 『석유를 지배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는 통설을 통감한 결과다.
이 협정은 미·영의 강력한 지배아래 국제석유기구를 만들어 생산·유통·가격을 관리한다는 것이었으나 냉전이 격화되고 중동진출을 둘러싼 미·영의 각축전이 벌어지자 자연히 유산의 운명을 맞았다.
그후 30년이 지난 오늘 다시 「키신저」는 미·서구·일본이 정치·외교·경제·군사적 목적에 「에너지」까지 한데 묶은 신 대서양 헌장을 들고 나오고 있다.
석유를 새로이 국제관리기구 아래에 두자는 구상이다. 또한 석유소비 국 연합체를 구성하여 석유시장에 신질서를 세우자는 뜻도 있다.
이러한 「키신저」의 제의에 주요 소비 국들이 보조를 맞추었는가하면 이 역시 그렇지 못하다.
우선 자원 무 보유국인 일본은 처음부터 이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독자적으로 중동산유국과 손을 잡는 방향으로 나갔다.

<서독, 국영석유회사 설립>
여기에 뒤질세라 서독은 국영석유공사를 설립하여 중동·「아프리카」산유국과 제휴하려는 활동을 강화했으며 불란서·이태리도 관민 협조하여 중동산유국과 합작하는 수단을 적극화했다.
이러는 중에 일어난 것이 중동전이다. 서구 주요 국은 60일간의 재고가 있어 큰 영향이 없다고 밝히는가하면 미국은 아직도 자급할 수 있는 단계이므로 아무런 충격이 오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중동전이 장기화할 징후를 보이면서 미국을 비롯한 영국·서독·일본 등 강대국들은 석유배급제를 불가피하게 실시할 준비를 하고있다. 중동전이 「에너지」위기를 더욱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중동석유에는 동구권도 무관할 수 없다. 소련은 자급이 가능하지만 동구권에 석유를 공급해야할 입장에 있다. 「이라크」·「이란」에서 소련이 석유를 들여가는 것은 동구권에의 공급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소련은 석유자원위기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서부「시베리아」의 석유·천연「개스」를 개발해야할 필요성에 쫓기고 있다. 미·서독·일본은 이에 호응, 「시베리아」유전개발에 공동, 또는 독자적으로 참여할 교섭을 소련과 벌이고있다.
중동에서는 미·소가 대립하고 있으면서 「시베리아」개발에서는 손잡는다는 모순은 석유라는 마물이 그려낸 역사의 희화라고 할 수 있다.

<중공, 자급자족하고 남아>
이번 중동 전에서 이례적으로 조용한 것은 중공이다. 중공이 66년에 발표한 원유매장량은 약90억t으로 충분히 자급자족하고도 남는다.
만주「하르빈」북방의 대경유전(매장량 10∼20억t), 산동성 북방의 승리유전(매장량은 대경유전 이상이라고 함)이 중요한 유전으로서 금년에 사상처음으로 일본에 1백만t을 수출했고 내년에는 3백만t이 예정되고있다.
중공은 석유자원에 별다른 고통을 느끼지 않으므로 중동 전에 신중히 대처하고 있는 것 같다.
외신을 종합해보면 중동 전은 장기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큰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너지」수급사정은 어둡다고 할 수밖에 없다.
세계열강의 정치·경제·군사적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석유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오월동주 하고있는 중동이 인류의 화약고라는 낙인을 벗는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이점이 바로 인류영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기도 하다. <현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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