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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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칼빈」주의가 「유럽」에서 한창 기세를 펴고 있을 때였다.
어느 사람이 부상하여 병원에 실려 왔다. 중상을 입어 말도 잘하지 못하던 그 사람은 자기 이름을 대지 않고 그냥 자기가 속해 있는 종교단체의 이름만 대고는 기절했다.
「막스·웨버」가 「프로티스턴티즘」과 서구근대자본주의정신과의 관련성을 풀이하는 책 속에서 든 예이다.
『나는 이 절대로 믿을 수 있는 종파에 속해있다. 따라서 지금 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나중에 지불할 때 조금도 폐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에 대한 충분한 보장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최선, 최상의 치료를 해다오.』
이런 뜻에서 그 환자는 소속종파의 이름만 밝힌 것이다.
처음부터 「칼빈」파라고 해서 신용이 있던 것은 아니다. 신용을 얻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음은 물론이다.
신용이란 단순히 상행위에서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에 신용이 결여돼 있다면, 모든 인간관계는 당장에 사절되고 말 것이다. 사회가 마비되고 말 것도 물론이다.
약방에서 감기 약을 사먹고 사람이 죽은 일이 지난 11일에 있었다. 알고 보니 감기약 속에는 쥐약이 들어 있었다.
쥐약이 약방에서 감기 약으로 둔갑하여 팔려 나갈 때까지는 여러 곳의 「체크·포인트」가 있었을 것이다.
약사관리에 책임이 있는 상국이 있을 것이고, 약품제조공장의 약사의 검사가 있을 것이며, 업자의 양식도 「체크·포인트」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약방의 조제사에게 충분한 조제자격이 있다는 것도 물론 그 중의 하나이다.
이런 많은 「체크·포인트」들이 모두 제구실들을 다하지 않은 것이다. 하기야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 철석같이 믿어왔다는 것도 아니다.
믿지는 않으면서도 싼 맛에 어쩔 수 없이 약 방의 조제약들을 사먹어 온 것이다.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독소는 약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을 좀 먹어 가는 독소들은 우리네 주변에 너무나도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나날이 늘어나는 공장에서 흘려 버리는 「메틸」수은의 폐액이 얼마나 되는지, 그 중에 얼마가 우리네 체내에 흡수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모른다.
PCB의 독성에 물든 식품들을 얼마나 먹고 있는지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자동차들의 배기「개스」가 얼마나 우리의 건강을 해쳐놓고 있는 것인지도 분명히는 모른 채 나날을 보내고있다. 살충제며 중성세제가 복합되어 생기는 복합오염이 앞으로 얼마나 퍼지게 될는지는 더욱 아무도 모른다.
만약에 모든 것에 「신용」이 기초가 되어 있다면 아직 아무 말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을 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뭣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를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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