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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747-2030-47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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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재
논설위원
경제연구소 연구위원

747을 이명박정부가 내놨을 때 국민의 환호는 대단했다. 그때 국민들은 경제 안 되는 게 좌파 대통령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정권만 바꾸면, 그래서 우파 장사꾼 대통령이 들어서면 모든 게 잘될 걸로 믿었다. 그런 과도한 국민 열망이 멋대로 뭉치고 엉켜 만들어진 게 747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해마다 7% 성장, 10년 내 소득 4만 달러, 세계 7위 부자나라’가 목표인 747은 지금 돌아보면 심하다 싶게 장밋빛 일색이었지만 초기엔 허황되단 말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747은 결국 믿을 건 미모뿐인 탤런트의 운명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잠깐 받더니 금세 퇴물이 돼서 누구도 돌아보지 않게 됐는데, 사실을 말하자면 퇴기(退妓)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허황된 비전, 정신 나간 대통령, 나랏빚만 늘린 만고의 역적 수준까지 떨어졌으니 말이다.

 어디 747뿐인가. 노무현의 ‘비전 2030’은 아예 잊혀졌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지금 와선 열성팬 아니면 기억해주지 않는 사생아 신세다. 2030년 국민소득 4만9000달러, 삶의 질 세계 10위. 성장과 분배를 안배해 2006년 복지 국가의 큰 그림을 그려냈는데, 아주 잘 만든 계획이었다. 하지만 1100조원의 재원 조달 방법이 빠진 걸 놓고 공격을 심하게 받았다. “정부가 ‘천국’을 그렸지만 그곳에 가는 방법과 길은 제시돼 있지 않다” “5년짜리 대통령이 뭣 때문에 30년 뒤를 걱정해서 저런 계획을 세우나” “좌파 영구 집권 플랜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는 끝이 없었고, 결국 대통령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이듬해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란 블랙홀로 또 온 나라가 휘말려 들면서 2030은 아주 먼 나라 얘기가 돼버렸다. 그때부터 관료든 정권이든 나라의 굵직하고 멀리 내다보는 장기 계획 같은 건 안 만드는 게 잘하는 일이 됐다. 뒤늦게 속칭 ‘노빠’들간에 복지 국가의 원형을 만든 걸작이라며 재조명을 한다는데, 정책이란 게 타이밍 놓치면 바로 똥이 되고 말뿐 무슨 유물처럼 시간이 흘러 가치가 더해지는 게 아니니 안타까울 뿐이다.

 474는 어떨까. 좋은 운명을 맞았으면 좋겠는데 벌써 싹수가 노랗다. 난데없는 747 흉내는 뭐냐, 경제 5개년 계획 흉내는 또 뭐냐, MB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지금 되살려 뭘 하자는 거냐, 복지·경제 민주화 다 어디 갖다 버리고 구체제 낡은 경제 틀을 다시 가져왔느냐며 벌써 비판의 날이 시퍼렇다. 쏟아지는 평가 중에도 부정의 언어가 더 많다. 요약하면 4만 달러는 불가능, 고용률 70%와 잠재성장률 4%는 세모쯤이다.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게 비판의 주재료인데, 사실 그런 게 뭐 그리 중요한가.

 비전이란 의지를 담은 숫자다. 개발에 땀나듯 뛰어서 지금보다 120% 노력했을 때 달성 가능한 것이다. 그냥 적당히, 지금대로 해도 되는 건 비전이 아니다. 그건 그냥 예상이요, 의지 없는 숫자에 불과하다. 474를 2.5·6.5·3.5로 했다 치자. 지금 474를 비판하는 이들이 칭찬이라도 해 줄 건가. 지금도 가능한 걸 무슨 비전이라고 내놓느냐며 손가락질하기 십상일 것이다. 어떤 비전이든 안 될 이유 100개를 꼽는 건 아주 쉽다. 되게 하는 방법 한 가지를 찾는 게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좀 과장된 비전이라도 몇 개 가진 나라보다 사실은 아무 비전 없는 나라가 더 비참한 법이다.

 비전 2030과 747이 실패한 건 안에서 동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북돋고 응원하는 목소리보다 물어뜯고 상처 내는 손가락질이 크고 많았기 때문이다. 474도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747도 안 돼, 2030도 안 돼, 474도 안 돼. 그러면 뭐가 남나. 우리 국민, 대한민국 경제에 되는 건 도대체 뭔가. 요즘 우리의 부러움을 사는 아베노믹스가 별건가. 돈 풀고 구조조정하는 것뿐, 뭐하나 특별한 게 없다. 그래도 일본 열도는 환호의 도가니다. 국민이 으쌰으쌰해주니 되는 것이다. 경제는 정권이나 기업이 키우는 게 아니다. 으쌰으쌰하는 국민과 함께 큰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