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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28년…어제와 오늘-NYT 「올든」기자의 평가와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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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엔」은 과연 세계평화를 보장할만한 능력과 권능을 갖고있는가? 창설 28주년을 맞아 세계평화기구로서의 「유엔」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가해지고 있다. 다음 글은 「뉴요크·타임스」의 「로버트·올든」기자의 「유엔」분석기사로 「헤럴드·트리뷴」지에 실린 것을 초역, 옮긴 것이다.<편집자 주>

<기적기대는 무리해>
창설28주년을 맞은 오늘의 「유엔」은 전쟁과 인권억압·국가단위의 빈익빈·부익부 등 인류가 당면한 초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별 힘이되 지 못했다.
중동사태·식민지인에 대한 잔학행위·전쟁이나 대량학살과 같은 중요문제도 일단 「유엔」에 제기되면 끝없이 진행되는 입씨름 속에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발트하임」 「유엔」사무총장 같은 이는 「유엔」의 이런 무기력에 대해 『「유엔」이 기적을 낳도록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유엔」은 주권국가들을 회원으로 갖고있는 단체이기 때문에 이 기구는 단지 이 회원국들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일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있다. 이러한 변명을 증명할 자료는 얼마든지 있다. 소련은 자기들이 지원하는 인도가 승세를 굳히자 인·「파」전쟁중지 안에 「비토」권을 행사했다.

<방문객 해마다 감소>
「팔레스타인·테러」분자들의 폭행을 막기 위한 결의안은 「아랍」국가에 의해 좌절되었다. 「부룬디」에서는 수만 명의 「후투」족들이 「투시」족에 의해 학살되었지만 이를 국내문제라고 주장하는 「부룬디」대표와 몇몇 「아프리카」동조국 때문에 「유엔」이 손을 대지 못하고 말았다.
「유엔」이 인기를 잃고있다는 증거는 매년 감소하는 방문객 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67년 「유엔」을 찾은 관광객 수는 1백11만6천명에 달했었지만 작년에는 겨우 76만5천명이었으며 금년 들어 8개월 동안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나 줄어들었다.
안보리상임 이사국간의 의견일치로써만 가능한 상설 평화군 문제에 관한한 의견이 일치한 적은 한번도 없다.
인도적 문제에 있어 「유엔」은 더욱 무력했다.
『국내문제에 개입할 권위를 갖지 않는다』고 한 헌장규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회원국이 자국 안에서 저지르는 온갖 비인간적 잔학행위도 이를 묵인해왔다.
「솔제니친」같은 사람은『도덕적 양심이 없는 세상에 「유엔」은 도덕의식 없이 태어났다』고 개탄하면서『고립된 개인의 울부짖음과 고통 속의 기도를 이 기구는 마치 곤충의 울음소리로 취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요즘 들어 괄목할만한 추세는 군소 국가들의 대량가입현상. 45년 「유엔」이 창설될 때 51개국이던 회원국수는 28년이 지난 오늘 1백32국으로 불어났으며 이번 회기 중 새 회원국이 들어오면 1백35개국이 된다.
늘어나는 회원국의 국기게양대를 세울 자리를 마련키 위해 「유엔」본부 뜰에 서있는 참나무들을 매년 베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열강·소국 의견상충>
군소 국가들의 대량진출로 「유엔」이 시급히 다루어야 할 문제에 관한 가치판단 기준에는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대부분이 식민지 통치에서 갓 벗어난 소국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문제와 강대국들이 중요하다고 보는 문제에는 큰 차이가 있다. 미국으로서는 국제 「테러」활동이 중요한 문제라고 보고 있지만 이들 소국들은 「로디지아」·남 「아프리카」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억압·착취 등이 훨씬 더 긴박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자 강대국들은 중요한 세계문제를 「유엔」을 따돌린 채 저희들끼리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초기 15년간 「유엔」에서 전위역할을 맡았던 미국은 이제 「유엔」의 표결에서 기권 또는 부표를 던지는 율이 75%나 되고있다.
강대국의 「유엔」기피증에 대해 「발트하임」사무총장도 우려, 이는 『인류생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있다.
분담금 문제도 심각하다. 「유엔」세입의 3분의2는 미·소·중공·「프랑스」·일본·영국 등 6개국에서 부담하고 1백26개국이 나머지 3분의1을 부담한다. 그러나 예산결정권이 있는 총회에서 이 1백26개국이 항상 다수표를 쥐고있기 때문에 예산은 적자를 면치 못한다.

<정신과의사의 역활>
한 예로 새로 창설된 「유엔」환경국을 「케냐」의 「나이로비」에 설치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이는 환경국을 「유엔」본부에 두는 것보다 수백만 「달러」가 더 들게 만들었다. 또 내년에 개최되는 해양회의는 「칠레」의 「산타아고」로 장소를 정해놓아 초과비용을 불가피하게 했다.
강대국은 군소 국가들이 자기 지역에 기구를 유치하려는 노력에 반대하지만 거기서 초래되는 비용은 이들이 내야만하기 때문에 여기서도 심각한 갈등이 빚어진다.
그러나 구체적 문제를 놓고 볼 때 「유엔」은 국제적인 정신과 의사와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 해결을 도모할 수는 없지만 자국의 불만이나 억울한 사정을 얼마든지 토론 수 있는 광장이기 때문이다.

<대화의 광장 안 터 줘>
또 「쿠바·미사일」위기가보여 주었듯이 절박한 핵전쟁의 위기가 각일 각 다가오고 있는 순간에 「유엔」안보리는 대화의 광장을 마련해 줌으로써 당사국들이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노기를 발산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 「유엔」주재 미국대표였던 「찰즈·요스트」는 이와 같은 소극적 역할에 대해『「유엔」의 중요한 기능은 어쩌면 단순히 존재해있는데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유엔」은 워낙 거대한 행정조직이면서도 형식상의 장인 사무총장이 늘 국제분쟁조정에 신경을 써야하기 때문에 머리 없는 거물로 존속하고 있다. 1만2천명의 직원을 갖고 있지만 분담금 지불량에 따라 회원국에 「코터」제를 두어 직원을 채용하고 있기 때문에 인사관리는 엉망이다. 회원국 정부는 국내에 두어서 성가신 외교관이나 무력하되 괄시할 수 없는 인물들을 「유엔」에 보내기도 하고 「미니」국가의 경우 초년병을 보내어 「유엔」에서 훈련을 쌓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배짱은『유엔」에서 실수를 많이 해서 시행착오의 교훈을 얻어 오라』는 것이다.

<재정난 갈수록 심각>
한때 인도는 「유엔」의 요소마다 사람을 넣어 「유엔」기구가 온통 그들의 손에 놀아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인도산 「마피아」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것이다. 한번은 「호모」들만이 한 부처를 석권하여 말썽을 빚은 적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유엔」이 창설되던 45년 국제평화기구에의 이상을 안고 「유엔」에 들어온 「코즈머폴리턴」적 외교관은 이제 「유엔」내『최후의 「모히칸」족』의 운명에 놓였다고 한탄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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