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송길영의 빅데이터, 세상을 읽다

TV야 미안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소셜 빅데이터를 통해 지난 4년간 ‘보다’를 분석해 보면 ‘TV’와 ‘방송’의 비중은 꾸준히 하락하고 ‘영상’과 ‘앱’이 약진했다. ‘바보 상자’가 누려온 주도권이 ‘똑똑한 전화’로 넘어가는 것이다. 다중 작업(Multi-tasking)이란 게 있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식사하는 걸 당연한 일로 여긴다.

 스탠퍼드대학의 리처드 나스 교수에 따르면 다중 작업은 기대와 달리 별반 성과가 높지는 않다고 한다. 그의 뇌 연구에 의한다면 그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다는 뿌듯함 정도만 느낀다는 것이겠다. 그럼에도 인간은 계속해서 다중 작업을 도모해 왔다. 오늘날 우리는 TV 앞에서 어떤 행동을 할까.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대화하거나 웹서핑을 하면서 TV는 귀로 ‘보고’ 있다. 트친들의 방송 평가나 인터넷의 실시간 검색어에 따라 TV 채널을 돌리는 경우도 흔하다.

 TV는 실시간(on-air)으로 보는 게 아니라 원할 때 선택해서(on-demand) 보는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실시간으로 집계되는 시청률이 내려앉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 예능프로그램 시청률은 예전의 절반이다. 80여 년간 지속된 TV 황금시대의 끝물 조짐이 뚜렷하다. 지난 5년간의 방송·연예 연관어를 봐도 ‘신문’ ‘언론’ ‘기자’의 빈도는 줄고 ‘촬영’ ‘영상’ ‘보다’와 같은 직접 소통하는 표현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직거래’ 비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제 방송국도 방송을 내보내는 곳에서 콘텐트를 제작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할 운명이다. 자칫 자체 제작을 게을리하다간 언제 게르만 민족에게 방비를 맡겼다가 무너진 로마 꼴이 날지 모른다. 뒤집어 말하면 좋은 콘텐트를 만들 경우 전파와 통신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를 빛의 속도로 지배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구나 음성인식과 자동번역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세상이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나온 지 35년이 흘렀다. 이제 라디오가 갔던 길을 TV가 따라가고 있다. TV야 미안해, 그동안 너무나 고마웠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약력 : 한국BI데이터마이닝학회의 이사로, 소셜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읽는 일을 하고 있다.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재 이화여대와 숙명여대 겸임교수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