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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짜증스런 거리 질서-출근길 시민 따라 「걷기 운동」현장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거리의 길서가 길을 걷기엔 너무 짜증스럽다. 유쾌한 기분으로 집을 나서 출근길이나 등교길에 오른 시민과 학생들은 집 대문을 나서면서부터는 앞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에 이른 아침부터 기분을 잡치고 이맛살을 찌푸리게 된다. 청소차에서 날리는 연탄재, 「버스」의 매연, 음식점에서 풍겨내는 냄새, 좌측통행을 무시, 어깨를 치고 구두코를 밟으며 지나가는 무례한 일부 시민들. 차도에서 쫓겨 나 인도를 비집고 달리는 자전거와 「리어카」등 걸어보려는 시민들은 너무도 혼잡한 거리환경에 진땀을 빼고 맥이 빠진다. 건강하고 명랑하게 걸어보려는 마음은 금새 피곤에 지친다. 15일 출근길의 시민을 뒤따라 걷기 운동의 현장을 가본다.
재일 교포로 유학 온 진명여고 2년 태목양(18)은 용산구 효창동에서 135번 버스를 타기 위해 남영동「버스」정류장까지 약2㎞를 걸어다닌다. 소요시간은 20분. 15일 상오7시20분 집을 나선 대목 양은 효창동 사무소 앞 인도에서 연탄재를 마구 날리는 청소차와 마주쳤다. 대목 양은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고 종종걸음으로 청소차를 피해 효창운동장 앞에 이르렀다.
이때 경주용자전거 20여대가 아침 길을 온통 차지, 「지그재그」로 맴돌았고 짓궂은 청년은 대목 양 앞으로 힘껏 달려들다가 갑자기 방향을 꺾어 대목 양을 놀라게 했다.
숙명여대 앞 내리막길은 차도와 인도의 구변이 없는 너비 8m도로. 매연「버스」와 「택시」가 줄을 잇자 대목 양은 길옆으로 붙어서 전주사이를 빠져나갔다. 제동초등학교 5년2반 하정민군(12·성북구 삼선동285)은 15일 3·3㎞떨어진 학교까지 1시간을 걸어서 등교했다.
중화동 네거리에서 차량정지신호를 보고 왼손을 치켜들고 막 길을 건너 인도에 오르려는 순간 자전거에 우유 통을 실은 20대 청년이 휙 지나면서 『야 임마, 죽고싶어』 험상궂게 고함쳤다. 하군은 하마터면 자전거에 치일 뻔했으나 가까스로 피했다.
구덕여고 앞 너비 3m의 인도에서도 청소부의 「리어카」와 연탄을 실은 손수레 등 한꺼번에 4대가 밀어닥치고 8대의 자전거가 골목길로 비집고 들어갔다.
사원 정고상씨(37·서대문구 불광동244)는 적십자병원 옆 공장까지 아침마다 약 6㎞를 걷는다.
15일 집을 나와 녹번동 고개까지(약2㎞)는 행인이 뜸해 15분 동안 잰걸음으로 유쾌하게 걸었다.
홍은동 고개를 넘어서자 분뇨수거 차 1대가 인도를 가로막아 점거해있고 인부 10여명이 지게질을 했다.
정씨는 인분냄새를 피해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길목을 빠져나가는데 4분이나 걸렸다.
다시 1㎞쯤 걸었을까 길옆 자동차 서비스공장에서 「타이어」조각과 기름걸레 등 쓰레기를 인도 가운데 모아놓고 태우고 있었다. 고무 타는 냄새, 새까만 그을음이 연기 속에 섞여 정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서대문네거리를 지나 적십자병원 앞을 지날 때 고가차도가 인도를 파고들어 노 폭은 겨우1·5m. 마주 오는 통행인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밀려야 했다.
보도를 걷기에는 거리질서가 너무 혼잡스럽다. 걸음을 내걷기조차 어려운 보도에 「리어카」·자전거마저 뛰어들어 한층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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