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작가 이창래, 이번엔 판타지 소설 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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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삶의 본질에 대해 예리한 성찰을 보여 준 이창래 교수. 이번 신작은 어둡고 망가진 미래사회에서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중앙포토]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의 작가 이창래(4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디스토피아 판타지 작가로 변신을 꾀했다. 그의 신작이자 다섯 번째 장편인 『이런 만조에(On Such a Full Sea)』에서다.

 소설의 배경은 공기와 물이 오염돼 삶의 터전을 옮긴 사람들이 노동자 식민지(B-Mor)와 자유 시장 자치주, 엘리트 차터 빌리지 등 상중하로 엄격하게 구분된 계급 거주지에 살고 있는 미래 미국 사회다. 노동자 식민지에서 수조 잠수부로 일하는 중국 이민자 출신의 16세 소녀 주인공인 ‘팬’이 사라진 남자친구와 동생을 찾아 길을 떠나면서 가족과 집단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무엇보다도 ‘우리(we)’라는 집단적 시점을 도입해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도 신작의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책의 제목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 4막3장, ‘인간사에는 운명의 조수가 있는 법. 만조를 잘 타면 행운에 이르지만, 놓치면 인생의 모든 항해는 얕은 여울에 처박혀 불행에 빠지게 된다오. 우리는 지금 이런 만조에 떠 있는 셈이오. 유리할 때 물살을 타지 않으면, 우리의 모험은 허사가 되고 만다오’의 구절에서 따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로봇이나 식인괴물 등이 등장하는 과학소설(SF)은 아니지만 현재의 실패가 야기한 미래의 모습을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며 판타지의 영역을 선보이고 있다”며 “이번 신작으로 디스토피아 판타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진지한 작가의 명단에 그의 이름도 추가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LA타임스는 “그에게 이민자나 유색인종 작가라는 꼬리표를 붙이려 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번 신작까지 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작가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갔다. 예일대와 오리건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월가에서 주식분석가로 일했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 그는 월가에서 일한 지 1년여 만에 직장을 관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5년 발표한 『영원한 이방인』으로 미국 문단과 독자의 호응을 받으며 작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제스처 라이프(A Gesture Life)』와 『가족(Aloft)』 『생존자(The Surrendered)』 등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다룬 작품을 선보이며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며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NYT는 2000년 그를 ‘미국 문단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꼽기도 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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