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휴대전화 감청, 사생활 보호 어떻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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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기관의 휴대전화 감청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합법 감청이 용이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사생활 보호라는 헌법적 요구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보다 신중하고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3일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통신사가 국고 지원을 받아 감청 협조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 도록 하는 내용이다. 유·무선 통신 중 휴대전화 비중이 75% 이상인 실정에서 고도화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선 수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긴 어렵다. 노무현정부 때 국정원이 자체 설비를 폐기한 이후 휴대전화 감청은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특히 통신업체들이 감청 설비를 갖추지 않으면서 테러·간첩사건 대처에 애로가 많다는 게 국정원의 설명이다. 검찰과 경찰도 유괴·납치 같은 강력범죄 수사에 감청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1994년 민간업자의 감청 장비 설치를 의무화했고, 독일·영국 등도 그 뒤를 따랐다.

 문제는 정보기관의 사생활 침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정치 관여 의혹이 꼬리를 무는 마당에 감청을 국정원의 선의(善意)에만 맡기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법원이 영장을 검토한다고 해도, 법이 허용하는 감청 대상이 지나치게 많은 데다 수사와 관련이 없는 대상을 영장에 끼워넣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절차상 문제뿐 아니라 감청 설비가 기술적으로 어떻게 운용될지도 충분히, 투명하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헌법상 권리와 정보기관의 안보 활동이 부딪히는 예민한 사안을 과연 의원 입법에 맡기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그 내용과 필요성, 오·남용 대책을 설명하고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