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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소 접근 소련의 대한 접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895년 제정「러시아」의 외상「로마노프」가「니콜라이」2세에게 올린 극동정책에 관한 상소문을 보면「츠아」자신의 손으로 다음과 같은 지시를 상소문 하단에 기입하고 있다. 즉 『극동에서 연중 쓸 수 있는 부동항이 필요하다. 그 부동항은 한반도에 위치해야 하며 그 부동항과「러시아」영토간에 한 조각의 육로로 연결되어야한다』고 쓰고 있다.
「츠아」의 이러한 제국주의적 목표를「츠아」정권과는 이념과 체제를 달리한다는 현 소련정권이「니콜라이」2세의 소원을 성취시켜놓은 것이다.
오늘날 소련의 원자력잠수함이 북한 북부의 어느 항구를 자유로이 쓰고 있으며 소련은 무기체계나 병참 적 보급에서 북한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으며「러시아」,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제국주의적 정책을 충분히 달성한 셈이다.
한국전쟁의 발상이 주로 소련에서 기인하였다는 것이 그 제국주의적 성격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이 거대한 소련과의 관계성립이란 문제에 직면하면서 몇 가지 기본적인 문제점이 제기되다.
무엇보다「남한의 대소접근」의 목표는 한반도, 나아가서 동북아의 긴장의 근원인 북한 군사체제를 해소해나가는데 소련이 얼마나 협력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푸에블로」호 사건이나 EC-121기 격추 때 북한의 군사기동력에 필수인 석유를 북한과 소련국경에 걸쳐있는 송유관을 끊음으로써 단절하였다는 예에서 그 희망은 없지도 않다. 한-소간의 우호성립은 아니더라도 적대관계의 해소는 소련이 어떻게 평양에 작용해주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소련의 대한접근」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이다. 소련은 중공남방에서 미군이 철수한 뒤 중공포위라고 하는 범위에서「아시아집단 안전체제구상」을 배경으로 하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60년대에 걸쳐 북한을 골몰케 한「중-소 분쟁」이란 「딜레마」가 한국에도 다가오는 것이다. 섣불리 한국이 소련정책에 말려 들어가면 중공이 북한을 자극할 것이며 이는 곧 휴전선의 군사적 압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유니버시아드」한국단독 참가에도 미묘하고 복잡한 열강의「게임」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소련이 남한을 이렇게 너그러이 보아주니 앞으로 미국도 북한이「뉴요크」서 자유로이 정치투쟁을 해갈 때 봐주어야 한다는 상호주의를 견주어 북한이 배짱을 퉁겨보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상호주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북한은「뉴오크」에 정식 입국하여 남한의 안보의 기본인「유엔」군 철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허용하며, 남한은 문화·「스포츠」수준에 불과하다는 엄청난 차인 것이다.
이점 미국의 분발을 특히 바랄 뿐이다.
우리의 대소접근은 결국 우리가 어떻게 대외적으로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기본문제에 당면한다. 한반도가 열강 속에서 그 전략적 위치에 놓여있다면 어느 한나라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의 일부를 사용할 때 곧 제3국에는 적대적 전략가치로 변모하므로 서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사용치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겠다.
아무리 소련의 극동함대가 조선해협관리정책상 거문도 같은 기항지가 필요하더라도 이를 우리가 허용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가 중·소간의 분쟁이나 일-중공의 경합 속에서 그 매개체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상 한반도의 대소접근에는 한국이 대외적으로 그 기본적 존재양식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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