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불문율 제1조 …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 말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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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19면

상당수 골퍼들은 골프 규칙을 거추장스러워 하고 불편해 한다. 서로 합의해 골프 규칙의 적용을 배제하기도 한다. 심판이 없는 유일한 스포츠가 골프다. 골프 규칙은 특정 플레이어에게 불공평한 특권과 혜택을 주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골프 규칙의 변천사를 살펴보면 자명하다.

[소동기의 골프 이야기] 최고의 골프 규칙

 14세기께부터 널리 퍼진 골프는 코스가 사유지가 아닌 공유지였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로이 즐길 수 있었다. 플레이가 끝난 뒤 여성들은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남자들만이 동네 여관이나 술집에 들러 골프에 관한 담소를 나눴다.

 스코틀랜드의 리스(Leith)에 지금도 남아 있는 술집 ‘럭키 클레펀즈 태번’에는 아직도 이 같은 흔적이 남아 있다. 골프를 목적으로 하는 사상 최초의 클럽 조직 ‘아너러블 컴퍼니 오브 에든버러 골퍼스(Honorable Company of Edinburgh Golfers)’가 결성됐던 것이다. 1744년 5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754년 5월 14일. 당시 세인트 앤드루스의 ‘베이리그 태번’에서 2주마다 모이던 22명의 귀족과 신사들이 R&A의 전신인 ‘세인트 앤드루스 골핑 소사이어티(St Andrews’ Golfing Society)’를 결성했다. 세인트 앤드루스 골핑 소사이어티는 수백 년간 남녀노소가 가볍게 즐겨왔던 골프에 귀족계급이 진출하는 계기가 됐다. 클럽 생활의 질서와 게임 중의 매너, 상류 사교계 내에서의 서열화 등 많은 규칙을 세웠다. 그 권위는 현재까지도 흔들림 없이 이어지고 있다.

 두 클럽 사이에 사상 초유의 클럽 대항전이 1774년 7월 25일 열렸다. 시합 개시 6주 전인 1774년 6월 10일 오전 10시. 양 클럽에서 2명씩 선정된 규칙위원회의 위원들은 세인트 앤드루스의 클럽하우스에서 얼굴을 맞댔다. 좌중의 리더로 군사법정의 명 재판관인 토머스 키치 대령이 선출됐다. 그는 회의에 앞서 이런 인사말을 했다.

 “마침내 우리들은 규칙 제정에 착수했지만 한 가지만은 명백히 하고 싶습니다. 골프 규칙은 세간에 존재하는 형법이나 민법 같은 법률과는 다릅니다. 사회적인 법률은 나쁜 일을 방지하고 범죄자를 벌할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골프 규칙의 대상은 골프를 사랑하는 선의의 사람들입니다. 이 위대한 게임에 매료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대자연 가운데서 자기 연찬에 매진해 바람이나 구름과도 우정을 쌓고 보람을 구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골퍼 중에는 악인이 없다는 게 저의 신념입니다. 골프는 자기의 플레이를 자기 스스로 심판하는 경기이므로 각자의 양심을 믿고 골프 규칙은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밤늦게 마침내 10개의 조문이 작성되었다. 위원장인 키치 대령은 10개의 조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법원의 서기로 근무했던 크리스토프 오웰 위원의 주장에 따라 3개의 조문이 추가되었다. 최초의 공식적인 골프 규칙은 이렇게 탄생됐다.

 최초로 골프 규칙이 제정되기 300년 전인 1457년에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는 궁술 훈련에 방해된다며 골프 금지령을 내린 바 있다. 이는 골프 규칙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부터 골프가 성행했음을 뜻한다. 코스는 물론 클럽도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시대에 말썽 없이 골프가 성행했던 것은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개의 불문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자기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둘째, “볼은 있는 그대로 플레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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