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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리의 중국 엿보기] 미·중 관계 앞날을 읽는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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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호 29면

한국 외교안보의 에너지가 실질적으로 가장 많이 집중되고 있는 북한 문제에 있어서도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중국은 북한 문제를 미·중 간의 아태 지역에서의 세력 경쟁이라는 큰 안목에서 보기 때문에 근본적인 미·중 관계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한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기가 지난하다는 관측에도 갈수록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미·중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여기에도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경쟁하고 있다. 첫째는 앞으로의 미·중 관계는 충돌 가능성보다는 협력과 상호의존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현재의 미·중 관계는 냉전시기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미·중 간에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경쟁보다는 상호 의존하고 협조하는 체제로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불어 미·중 간에는 공식적인 관방 채널이 90여 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민간 차원까지 합하면 300여 개의 상호 소통채널이 있다는 점을 이들은 꼽는다.

미·중 관계를 긍정적으로 낙관하는 방점으로 기우는 시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오바마와 시진핑이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의 서니랜즈에서 가진 정상회담이다. 언론이 ‘세기의 만남’이라고 한 이 모임에서 두 정상은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앉아 허심탄회하게 양국이 대결 아닌 대화와 협조로 풀어나가기로 한 소위 ‘신형대국관계’ 모델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양국은 또한 북한에 대한 핵보유국 불인정, 핵무기 개발 불용에도 동의해 한반도 미래에도 긍정의 서운이 깃드는 듯했다.

문제는 아마도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디테일에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은 중국이 제시한 ‘신형대국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직 중국 외교부 관리도 참석한 모임에서 필자가 직접 들은 말이다.

중국이 생각하는 ‘신형대국관계’는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에서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도 미국의 현재 지위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보면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해서도 안 되고, 중·일 영토 분쟁에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일종의 중국판 ‘먼로 독트린’이다. 미국이 중국의 ‘마당’인 아시아를 건드리지 않으면 중국도 미국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동 문제 등 다른 미국의 이익에 훼방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중국도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바마 앞에서 일부러 디테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내막을 아는 한 미국 측 인사의 풀이다. 동의할 수 없으니 서로 간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남겨두고 악수를 하고 마쳤다. 이것이 ‘세기의 만남’이라고 불리는 ‘신형대국관계’의 본 모습이다. 양측 다 국내정치 수요 때문에 화려한 모습으로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보여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간간이 나오는 이런 내막을 알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언론도 정부가 설정한 어젠다에 맞추어 담론의 행간을 진행시키기도 한다. 지난해에 한국에서 크게 일었던 소위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것이다’라는 담론이 대표적인 예다.

미·중의 미래는 충돌로 갈 가능성과 협조로 갈 가능성이 동시에 상존한다. 한국은 어느 쪽에 ‘베팅’을 하고 준비해야 할까. 미·중이 충돌로 갈 때 한국이 준비해야 할 숙제는 더 많아진다. 귀찮고 힘이 더 들더라도 신중한 쪽으로 준비하는 것이 미래에 남는 것이다. 그것이 120년 전 갑오개혁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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