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선제적 갈등 대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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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3일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해 현안 논의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정부와 의료계, 건강보험 가입자단체(노동계·농민 등)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어 원격의료·의료법인자회사·의료수가 등의 현안을 논의하자는 거다. 문 장관은 이날 의료계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오찬을 하며 노환규 의협회장 등과 대화를 나눴다.

 의료계 신년행사에 주무 장관이 참석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리 볼 것만은 아니다. 복지부 장관의 의사협회 방문은 2002년 이후 12년 만이다. 의사협회와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파동 이후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 왔다. 이번에도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을 두고 의사협회가 11일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연말 철도파업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의사들마저 집단휴진을 하면 정초부터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무 장관이 먼저 움직여 의료계에 손을 내민 것이다. 문 장관은 취임한 지 보름 만인 16일 한국제약협회를 찾아 약가 인하를 걱정하던 회장단의 하소연을 들었다. 의료 정책은 어느 분야보다 강력한 규제행정이다. 규제 당하는 측에서 보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책에 다 반영하지 않더라도 찾아가서 불만을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 부분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철도파업 초기에 “민영화가 아니다”고 카메라 앞에만 서던 다른 부처 장관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문 장관의 방문에 의사협회가 아직 화답하지 않고 있다. 11, 12일 파업 출정식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도 차제에 집단행동은 국민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주무 장관의 진정성을 믿고 대화의 장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도 이번에 제안한 협의체를 노무현 정부 때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김대중 정부의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와 같은 기구로 확대해 의료제도 전반을 논의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그게 안 되면 장관이 직접 챙기는 협의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명멸했던 그저 그런 의(醫)-정(政) 대화기구로 전락해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