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콩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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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싱콩」(Singkong)은 다섯 차례에 걸친 군사혁명으로 마비된 모국으로부터 1970년에 분리되어 독립을 얻었다. 「싱콩」인들은 활기에 넘치고 부지런하며 「경제학」이라는 종교를 믿고 있어 게으르고 「균형 잡힌 지역성장」이라는 종교를 신봉하는 모국인들과는 대조적이었다.
4천평방 「마일」의 비좁은 영토와 대부분 도시 인구인 5백만의 인구를 지닌 「싱콩」정부는 금본위 자유항임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신생독립국가를 「도시회사」처럼 운영하겠다고 선언하는 한편 외국자본의 투자를 환영한다고 밝히고 20세기의 제4반기에 있어서 국가란 인간 이외의 어떠한 자원도 필요치 않다는 그들의 확신을 표명하였다.
모국의 지도자들은 도시란 근원적으로 악이고 부패되며 혼잡한 곳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재생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식량과 원료를 농촌 지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는 까닭에 후배지가 없는 「싱콩」정부의 이와 같은 처사를 비웃고 곧 굶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태는 이러한 판단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다.
「싱콩」의 역사가들은 뒤에 모국이 만든 최후의 전국 지역 개발 계획을 보고 「싱콩」지역이 전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전국 부력의 50%를 생산했지만 전체 개발 예산의 5%만이 배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독립은 결과적으로 사회 간접 자본 영역에 3배 내지 50배의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취업자의 대부분이 불필요하게 되었음을 발견하고 당황하게 되었다. 신정부 하에서는 종래의 기술자 수의 4분의 1로써 2배 이상의 도로를 건설할 수 있고 3분의 l의 건축가만으로도 필요한 주택의 전부를 건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전 수준의 취업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는 공공 「서비스」부문을 확대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해서 「싱콩」은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세계 시장에서 원료를 사다가 가공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고 제품을 팔아서 그 일부로 식량을 사올 수 있게 되었다.
값싼 공업 용지와 숙련 기능공이 보강되어 있는 까닭에 각국 투자가들이 줄을 지어 살도 하게 되어 노임이 상승되니 모국으로부터의 이주자가 격증하게 되어 공업 성장과 이주를 규제하는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게까지 되었으나 1인당 GNP가 7년마다 배증 되는 눈부신 발전을 계속하였다.
이 우화는 「휘튼」교수가 「싱가포르」나 「홍콩」과 갈이 천연자원이 풍부한 배경지를 못 가진 도시국가도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성장 이론을 설명하려는 창작품이다.
그의 이론이란 가장 유리한 지점에 투자를 집중시킴으로써 전체의 성장을 극대화 할 수 있고 또한 발전 단계가 각각 다른 지역의 조건을 균등화하고자 하는 노력은 비능률적이거나 절망적이라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우리는 이 우화에서 분권과 발전의 상관도, 인력 자원의 중요도, 기업식 행정 목표에 따르는 경제성 등 많은 시사를 불균형 성장론을 배경으로 한 낙관주의적 견해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발전 목표를 경제성으로만 규제해 보려는 노력 뒤에 따라 오는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각을 연장시켜 보아야겠다. 일관성과 안정성에 견주어 본 졸속 행정의 효율성, 분배 소득의 불공평에서 나타날 정치적·사회적 불안 가능성, 외자 부담의 뒤처리에 따르는 허무성·국외 원료 시장에 종속된 경제의 취약성 등 허다한 문제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가장 궁금한 것은 「스톡홀름 회의」같은 국제 환경 회의에 환경판매 댓가와 경제 번영의 「밸런스·쉬트」를 어떻게 작성해서 보고했을까 하는 점이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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