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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프라하」의 3박 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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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런던」을 떠난지 1시간 50분, BEA기가 활주로로 미끄러져 내리면서 공항 건물 위의 큼직한 「로마」자 표시가 확 눈앞에 들이닥친다. 「PRAHA」.
서울의 김포보다는 약간 더 클까. 세계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좀 무성격한 건물이 언뜻 미국 어디, 또는 서구 어느 중소도시의 비행장이라도 어색한 게 없다.
그래도 너무 무국적스럽기가 뭘 했던지 「버스」가 공항 건물 앞으로 다가서면서 출영대 벽을 가로지른 현수막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전 세계 반제국주의 인민들의 단결과 친선을 위하여….』 동백림에서 돌아올 세계(공산)청년제 대표들을 위한 것이다.

<동양 사람은 기자 1명 뿐>
스쳐 가는 여행객들 수가 비교적 적은 탓인지 건물 안은 무슨 병원 속처럼 깨끗하다. 거의 같은 시간「모스크바」에서 도착한「에어러프로트」기 손님들도 한데 겹쳐 출구를 향한 긴 복도는 그래도 꽤 붐빈다.
어디선들 빠지랴 싶게 끼지 않은 데가 없는 미국인들, 동서구인들. 두리번거려 보니까 그 많은 손님들 중에 동양 사람이란 기자 하나밖엔 없다. 역시 여긴 외진 곳인가 보다.
장사진에 끼어 담배 두 대를 피우고 난 다음 차례가 돌아와 출입국 관리관 창구 너머로 여권을 내민다. 『이것 말고 사증권이 따로 있죠?』
눈알이 유난히 새파란 중년 풍의 관헌 말에 미처 잊고 있었던 별식 용지의 「비자」증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내미니까 관헌은 사진과 기자 얼굴을 한번 훑어보곤 권태로운 듯 도장을 쿡 누르면서 뭐란 말 한마디 없이 여권과 사증권을 돌려 내준다.
『댕큐』하고 통과한 여권을 돌려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오히려 허전한 감 마저 든다. 누구들 모양 좀 실랑이 좀 겪고 해야 나중에 얘깃거리라도 될게 아닌가.
이윽고 세관리 앞에 다가가 「약간의 기대를 갖고 「트렁크」뚜껑을 열어 젖히니까 이 친구도 속을 더듬어 보는체 만체 그저 「댕큐」한마디로 기자를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 대접 삼아 라도 있음 직했던 공산국 다운 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미스터」박이시죠. 동양인이라곤 기자 하나뿐이었는지 질문조이기보다는 선언조로 복스럽게 생긴 중년 부인이 그저 통할 만한 영어로 말을 건네며 다가선다. 「체코」국영여행사 「차도크」의 영접원 「미나리코바」여사이다.

<한국 사람 처음 보는 부인>
『한국 사람 만난 일 있느냐』 『한평생 못 봤다』 『한국이란 말을 들어본 일은 있겠지』 『물론 있다. 그러나 한국에 관해 아는 것은 이거다』하고 달리는 차속에서 「미나리코바」는 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기자 코앞에 갖다 댄다.
그 동그라미 구멍으로 보니까 여름이라서 그런지 유방이 보일락 말락한「미나리코바」 앞가슴 위에 십자가가 달렸다.

<지금도 교회는 기능 발휘>
『「예수」신도냐』 『「가톨릭」이다』 『그러면 예배당에도 나가겠구료』하려다가 묻는 게 어쩌면 쑥스런 일일 것도 같아 「프라하」를 1백개의(교회) 첨탑이 솟은 도시라고 한다면서…』하고 일찌기 얻어들은 얘기를 밑천으로 유식한 체 건네 본다.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4백 73개다.』 원래부터의 「가톨릭」신자는 인구의 7할이나 되고. 「프라하」인구 1백10만을 4백75로 나눠 본다. 2천3백명에 뾰쪽당 하나 꼴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쯤이면 교회 밀도로 세계 최고인지도 모른다.
『이들 교회가 요새도 살아 있느냐?』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미나리코바」의 묘한 영어의 대답이다.
「프라하」의 한강 「폴라트바」강을 끼고 시내로 기어든다. 주위 언덕들 위에 치솟은 아름다운 성당과 교회들, 거리에 즐비한 각종 양식의 고색 창연한 석조 건물들.
천년 묵은 「프라하」를 『북쪽의「로마」』라고도 부른다던 「미나리코바」의 말이 곧이 들린다.
서른기의 기독교 성자들의 동상들이 줄이어 선 「찰즈」교(구주 최고의 석조 다리이다)를 건너면서 지금까지 기자가 본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이름들을 이렇게 손꼽아 본다. 「베니스」·「로마」·「이스탐불」·「빈」·「파리」「프라하」.
「호텔」「앰배서더」. 차가 멈추니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금테두리 제복의「포터」가 차문을 연다. 『구텐·타케』. 대접하는 품이 제법 됐다. 「프런트」에서 여권을 내놓고 절차를 마친 다음 장군 같은 콧수염을 단「벨·보이」를 따라 7층 방으로 오른다.
천장에 둥 떠 있는 「샹들리에」. 육중한 가구들, 차려 논 폼이, 야하게 화려하지도 남루하지도 않아 좋다.
방 1백 개를 겨우 넘는 이 「호텔」은 개업 한지 50년, 건물은 몇년전 l백살을 넘겼단다. 「슬라브」공산국 수도인데도 「호텔」이름들이 「앰배서더」「인터콘티넨틀」·「맬리스」·「파크」등 영어 이름으로 돼 있는 까닭도 그것들이 벌써 2차대전 전부터의 이름들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한국 서울의 조선「호텔」의 경우와 다를 게 없다.

<서방 담배 1갑에 3백원>
「프라크라브스케·나세스티」, 통칭 「벤체슬라우스」광장이 방문 「베란다」밑에 쫙 깔린다.
서울의 중앙청부터 시청 앞까지 만한 긴 광장. 꼭 5년전 8월 「두브체코」의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 「바르샤바」동맹군 전차군 앞에 비극적으로 점령되었던 당시 서방 신문들에 그 사진이 흔히 오르내리던 바로 그 「벤체슬라우스」광장이다.
8, 9층 「바로크」식 건물들이 둘러싼 광장 풍경은 아무 「드라머」도 없이 그저 산문적이다.
「체코」판 김주열인 「얀·팔라흐」군이 분신해 죽었다는 「벤체슬라우스」왕 동상 근처에선 내후년이면 개통한다는 지하철 공사가 한참이다.
『「프라하」의 봄』은 벌써 지났는가.
「호텔」앞 길거리의 「키오스크」.
「웨이터」에게 뭐 시원한 것 한잔 달라니까 「코카콜라」를 가지고 온다. 옆 「테이블」에서 소녀들이 빨고 있는 병들도 가만히 보니까 죄다 「코카콜라」다.

<소녀들이 코카콜라 마셔>
인류 사상 최대의 제국은 「로마」제국도, 대영제국도 아닌 「코카콜라」제국이었다.
담배를 사러 내려간다. 진열장 속에 꽉 찬 담배는 거의 모두가 「양담배」다. 「켄트」「러키스트라이크」 「로드먼」. 이렇다는 구미 담배 치고 없는 게 없다. 한 갑에 25「코루나」, 약3백원. 「체코」담배는 그 3분의1인 9「코루나」이다.
씁쓸한 「스파르타」표 「체코」담배 한대를 물어 피우고 신문난을 기웃거려 본다.
「체코」공산당 기관지 「루데·프라보」. 소련의 「프라우다」, 동독의 「노이에스·도이칠란트」, 「루마니아」의 「치엔리아」… 서구신문·잡지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빈손이 서운해 「루데·프라보」 한 장을 사 들고 3색 「파라솔」에 그늘진「사이드워크·카페」에 허리를 내리고 신문을 펴 본다.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1면 표제 위에 달린 표어가 「프라하」의 첫인상을 대변해 준다.
「5개년 계획의 보다 성공적인 달성을 위하여」, 용광로에 불꽃을 튀기는 젊은 노동자의 사진. 「농업 생산의 혁명적 증산을 위해 투쟁하는 집단농장 일꾼들이 뙤약볕 아래 「트랙터」를 몰고 가는 사진.
여기서도 길길이 장사진을 이루는 자동차들. 「체코」제의 「타트라」와 「스콧다」, 소련제인 「볼가」 「모스코비치」, 동독에서 나오는 「바르트·브르크」, 그리고 동구에서 조립돼 이름만이 달리 붙은 「미아트」와 「르노아」(「루마니아」의 「다치아」) 등 서구차 등이다.

<자전거 1대 25개월분 월급>
값은 1천 2백cc짜리 대중차가 약 7만5천「코루나」(약2백30만원). 이곳 평균 봉급액 약3천 「코루나」의 25개월 분이니까 결코 싼 편은 아니다.
그래서라도 자가용을, 또는 좀더 좋은 새차를 갖는다는 것은 이곳 사람들의 가장 큰 꿈으로 손꼽힌다는 것이다.
「마이카」 「마이홈」, 이런 꿈을 씹으면서 「체코」사람들은 산다.
사흘째. 부슬비가 내린다. 아무래도 선선해(알아보니까, 이곳 일대는 평균 해발 2백20m의 높은 지대) 「스웨터」를 하나 사 입을 겸, 구경 겸해서 「나포리치」가의 「둠·오대부」를 찾아간다. 『복장의 집』이라는 이름의 국영상점이다.
여기선 식료품의 집, 신발의 집, 유행 「모드」의 집, 하는 식으로 상점들이 대개가 전문화 돼 있다.
생산 수단은 물론, 유통수단까지 거의 다 국영이다.
그래, 「체코」 국경일, 가운데는 「국유화의 날」(10월28일)이라는 묘한 것도 있다. 값은 거의 서구 수준 정도로 비싸다.
「홍콩」제 「노타이·샤쓰」(2천원), 영제 「스웨터」(8천원), 동독제 「나일론」양말(6백원) 등 외국 상품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영어 잘하는 운전사 만나>
벌써부터 서구 중간상인들을 통해 동구에 흘러 들어오고 있는 우리 상품도 필경 있으리라 싶어 두리번거릴까 했으나 하오 6시 폐점 시간이 되어 그대로 나와 버렸다.
「택시」를 탄다. 운전사가 영어를 희한하게 잘하기에 영국에 가본 일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영국 화물선 선원 노릇을 하던 1948년 슬그머니 「런던」에 기어 들어가 머뭇거리고 있다가 밀입국범으로 붙들려 석달 동안 감옥 신세를 지고 「체코」로 추방당해 돌아왔다는 것.
벙어리 노릇만 하고 있던 참에 우선 말이 통하게 된 게 반가웠고 물정이 훤하기로는 「택시」운전사 만한 이도 없을 것 같아서 1시간 동안 마음내키는 대로 시내를 돌라고 부탁하고 우선 한세상 먹고사는 얘기부터 들어보기 시작했다.
이름은 「야노슬라브」. 올해 갓 쉰인데 4식구를 거느린단다.
빵집에서 일하다가 지배인과 『된통 한바탕 싸움을 하구서는 모가지가 잘려 집에 들어앉게 된 부인』, 고등학교 졸업반인데 『대학갈 생각은 않고 「팝송」과 축구에만 미친』 맏아들, 중학 3학년짜리로서 『「유럽」 바닥의 누구다 하는 축구 선수 이름 치고 모르는 게 없는』 둘째 아들-.

<빠듯한 택시 운전사 수입>
이렇게 4식구가 국영「택시」회사에서 받는 기본 봉급 2천2백「코루나」와 손님이 주는「팁」으로 먹고산다. 여기서도 「팁」은 공식적으로는 없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10내지 15%씩 내는 게 보통이다. 이 돈으로 전기·「개스」·수도세 약 5천원을 물고 식료품값과 의류비가 각각 2만원씩 든단다.
여기에 잡비·유흥비(담배·술·영화·「스포츠」구경·두 아들의「레코드」구입비)가 평균 2만원씩 나간다.
계산상으로는 월 2만원쯤은 저축을 해야 하겠지만 『도대체 돈이란 놈이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데 60세의 정년퇴직(여자는 55세)날도 얼마 남지 않아 부인을 방직공장에라도 취직시키려고 하는데 「이놈의 마누라가 도시 말을 안 들어서 목하 설득 공작을 벌이는 중』이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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