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로당 잔존세력>
정치위원회에서의 무력통일정책이 결정됨으로써 북한측은
①당 기관·정권 기관·민청·직업동맹(노동조합)·농민연맹들로부터 대량으로 인원을 선발하여 군대를 증강한다
②남한출신의 당원, 「빨치산」을 남한후방에 파견 침투시킨다
③「도」단위로 간부를 선발하여 남한점령지구의 행정용원으로 특별히 훈련한다(예를 들면 평양시는 서울시를 담당하고 황해도는 경기도를 담당하는 등)
④무력통일을 은폐하기 위하여 평화통일의 「캄파」를 조직한다
⑤남한점령의 최고 지도기관으로 「최고 군사위원회」를 조직한다 등 구체적 시행계획을 작성하였다. 소위 정치위원회에서의 이러한 결정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겨졌는가는 다음기회에 얘기하기로 한다.
한편 김삼룡·이주하·정태식이 체포되고 난 후의 남노당 지하당의 조직세력은 잔존 분포상태를 본다면 서울의 중앙위원회기관으로서 당시 내가 지도했던 중앙선전부·이논진·기관지부·「블록」 통제지도부, 그 다음에는 지리산의 이현상, 지리산 유격대의 사령 이현상의 밑에는 경남도당·전남도당·전북도당의 지도부가 모여있었다. 그 다음에는 경북도당 위원장인 배철이 팔공산 속에 숨어 유격대를 조직하고 있었다. 끝으로 충남도당 위원장 이주상이 대전시내에 숨어 있었다.
이렇게 서울·대전·팔공산·지리산에 조직이 각각 분산되어 고립되어 있었을 뿐 서로 연락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대전의 이주상은 혼자 겨우 체포를 면하고 숨어있었을 뿐 조직체라 말할 정도는 못되었다. 아마 수십 명 이상의 조직체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은 그나마 나와 이현상과 배철 세 사람뿐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지도하는 조직은 선전부·이론진·기관지부의 3부를 다 합하여 40여 명이었다. 그러니 활동마저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평양의 박헌영과 연락이 완전히 끊어진 조건하에서 나는 독자적으로 잔존 조직을 끌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되었다.
첫째, 조직의 재 검열이었다. 박헌영과의 연락이 닿지 않는 채로 이대로 몇 해 계속될지 모르니 장기적으로 조직을 유지해 나갈 계획들을 연구 강구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재정의 자급 자족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럭저럭 정태식이 체포 된지 근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이제쯤은 채항석 집의 감시도 풀려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항석 부처와 연락을 취하여 정태식의 그후의 사태를 알아보고 싶었다.
5월초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백주에 채항석의 집을 찾아갔었다. 현관을 들어서서 아무 소리도 없이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 봤다.
마침 채 부인은 없고 아이들만 있었다. 아이들이 나를 보더니 반가와 뛰어와서 부둥켜안기는 것이었다.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하며 조금 기다리니 채 부인이 외출하였다가 돌아왔었다.
『아이구, 김 선생님!』하며 채 부인이 반가워하며 이야기와 하소연을 끄집어내는 것이었다.
생질인 H가 변귀현을 W검사의 동생에게 연결시켜 주고 뒤에 미행이 따른 것도 모르고 정태식에게 보고하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체포되어 수사당국에 사실을 모두 자백하고 말았었다.
H가 체포된 것도 모른 채 밤 아홉 시쯤 되었는데 갑자기 『전보 왔어요』하며 현관문을 두들겨 문을 열었더니 난데없이 형사대가 들어왔다. 아래층 안방에서 채항석과 같이 이야기하고있던 정태식은 엉겁결에 벽의 방장 속에 숨어버렸다. 채항석 집에서는 겨울에는 벽에 남색 「빌로드」의 방장(방장=방벽에 치는 「커튼」)을 치고 있었다. 몸이 작은 정태식은 두터운 「빌로드」 「커튼」뒤에 숨어있어서 표가 나지 않았다.
채항석 부처만 잡혀갔었다. 채항석 부처는 정태식은 며칠 전에 집을 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딱 잡아뗐으나 H와 식모는 오늘 저녁에 밥을 채항석과 같이 먹고 방안에 있었다고 자백하였기 때문에 형사대는 다시 채항석의 집에 가서 지하실로부터 천장 지붕까지 다 수색을 해보았으나 정태식을 발견하지 못하였었다. 집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출도 못하였을 것인데 아무리 수색을 해도 정태식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밤이 벌써 새벽3시나 되었었다. 정태식은 몇 시간이나 「커튼」뒤에 서있으니 다리가 아프며 몸이 지쳐왔었다. 「커튼」틈으로 살짝 내다보니 형사하나가 방한가운데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꾸벅꾸벅 졸고있었다. 정태식은 「커튼」속에서 가만히 빠져 나와 졸고 있는 형사 뒤를 지나서 옆방 지하실로 들어가서 앉아 발을 뻗고 처음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때 수사기관에서는 최후적으로 집안을 한번 더 수색해 보고 없으면 그만 단념하려고 다시 왔었다.
정태식은 그것도 모르고 지하실은 처음부터 몇 번이나 수색을 하였으니 다시는 안 들어오겠지 하고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던 차에 드디어 발견되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채 부인은 정태식이 체포된 자세한 경위를 이상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다. 지나간 이야기이니까 말할 수 있지만 채 부인은 당시 친정아버지 장택상 수도청장의 덕분으로 범인은닉 혐의를 받지 않고 풀려 나오게 됐던 것이다. <계속><제자 박갑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