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연중·용일 '신조선책략' 샌드위치 외교 뛰어넘을 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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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를 도모하는 ‘중국의 꿈’과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전략’, 패전국 일본의 ‘보통국가화’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 각국의 대전략이 맞부딪치는 혼돈의 무대가 동북아다. 여기에 30살이 된 김정은의 북한까지 더해져 있다.

 조선이 주권을 뺏기기 25년 전인 1880년. 일본 주재 청나라 공서참찬(외교관) 황쭌셴(黃遵憲)은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에게 ‘조선책략’으로 알려진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제시했다.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의 책략이었다.

 러시아를 경계하는 청나라의 시각이 반영되긴 했지만 흑백논리로 특정 국가에 의존하던 조선에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고종과 대신들은 당시 조선책략에 상당한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물론 역량이 부족했던 조선이 활용하기에는 어려운 전략이었다.

 이를 120년 후인 지금 적용하긴 어렵다. 과거 조선이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였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돌고래쯤은 된다는 평이 있다. 고래 싸움을 뜯어말리진 못하겠지만 영리하게 살길을 모색하는 건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미·중의 패권 다툼과 중·일 간의 ‘넘버2’ 싸움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국이 어느 한쪽에 서는 건 도박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미·대중 관계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우리는 지금 한 발은 미국이라는 말[馬]에, 다른 한 발은 중국이라는 말에 올린 채 두 말을 타고 서커스를 하고 있다”며 “문제는 이 말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지난달 방한해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新)조선책략’, 한국이 주도하는 ‘신동북아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미·중과의 관계는 본처하고도 잘하고 애인하고도 잘하는 게 답”이라며 “지금은 ‘지는 청(淸)’과 ‘뜨는 일본’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패권국과 넘버2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일 간의 싸움엔 휘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김상기 미국 남일리노이대 사회철학 명예교수는 “눈앞만 보고 일본과 다투기보다는 일본과 관계가 좋아져야 중국도 우리를 더 대접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미·일을 연결하는 고리인 한·일관계 개선이야말로 다른 복잡한 정세를 풀 수 있는 열쇠다. 역사, 위안부 등 모든 영역을 포괄해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고 득 실을 따져봐야 한다”(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말도 나온다.

 조선책략에 보면 ‘조선과 일본은 늘 운명을 함께하는 지정학적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보완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논리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지만 일본이 중요하다는 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이지만 오히려 극적인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공로명 전 외교부 장관은 “아베 총리가 한·일관계의 저점을 이용해 일을 저질렀다”며 “하지만 한·미·일 안보협력을 고려할 때 한·일 관계 단절은 서로에게 이익이 안 되는 만큼 담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은 “60년간 동맹을 유지해온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과의 연대도 강화해야 한다”면서 “한·일관계를 복원해 한·미·일 공조를 공고히 하고 중국을 끌고 나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정리하자면 일종의 ‘친미(親美), 연중(聯中), 용일(用日)’의 전략이다.

◆특별취재팀=강민석·장세정·채병건·허진·정원엽 기자

◆조선책략=개항기 당시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대비하기 위해 조선·일본·청나라 3국이 펼쳐야 할 외교정책을 쓴 책. 초대 일본 주재 청나라 외교관 황쭌셴이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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