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강력한 중국, 미국은 행동으로 인정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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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중국이 새해 첫날부터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강력한 개인 권력체제를 구축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독주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미·중 수교 35주년 기념일인 1일 외교부 홈페이지에 올린 ‘중·미 신형대국관계 구축을 위한 일관된 노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은 반드시 중국의 전략 의도를 확인해야 하며 실제 행동으로 양국 지도자들이 표명했던 ‘성공하고 강력하며 안정되고 번영한 중국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수교 기념일 축하가 아닌 경고성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신형대국관계를 제안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은 중국이 평화적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응답했던 걸 일깨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제 전문가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이 제의한 신형대국관계에 대해 명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거부’라고 분석했다.

 신형대국관계는 2010년 5월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 다이빙궈(戴秉國) 당시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향후 양국 외교관계 개념으로 제시했다. 서로 핵심 이익을 침해하지 말고 협력해 공동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게 골자다.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인정하고 대만 문제나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 등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다.

 왕 부장은 “중·미관계는 서로 안심하고 의심과 경계심을 버려야 안정적이고 내실 있는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미관계는 시종 세계를 견인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화합하면 서로 득이겠지만 다투면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왕 부장은 그 근거로 공동 이익 범위가 너무 넓어 이미 ‘서로에게 서로가 존재’하는 ‘이익공동체’가 됐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1979년 수교 당시 24억5000만 달러(약 2조5700억원)였던 양국 무역은 지난해 5000억 달러로 늘었다. 인문 교류도 폭발해 수교 당시 수천 명에 불과했던 양 국민 방문은 지난해 400만 명에 달했다.

 왕 부장은 미국을 달래기도 했다. 그는 “양국이 공동 이익과 발전이라는 기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 계속해 엄청난 협력 케이크를 만들 수 있고 양국관계는 영원한 청춘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협력 가능성을 언급하며 그는 과거 5년 동안 양국은 14차례의 정상회담을 했고 전략경제대화와 고위층 인문 교류는 90여 차례, 그리고 수교 이후 지금까지 양국 41개 성과 주, 201개 도시 간 자매결연이 있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이에 앞서 지난달 16일에도 중국 공공외교협회 등이 주최한 ‘2013 중국과 세계’라는 포럼에서 “내년 중국은 신형대국관계와 주변국 외교, 개도국 외교, 경제 외교, 개최국 외교 등 다섯 가지 외교에 주력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를 최우선 외교 목표로 설정했다. 위안펑(袁鵬)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미국연구소장은 “신형대국관계는 중·미가 아시아, 군사, 인터넷 등 세 부문에서 협력을 이뤄 양국 이익과 세계 평화를 보장하자는 것이며 미국의 협력 여부가 새해 양국 관계 안정의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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