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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벗는 「D·H·로렌스」의 사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아들과 연인들』『채털리 부인의 사랑』『무지개』 등 많은 명작소설을 남겼던 영국작가 「데이비드·허버트·로렌스」(1885∼1930)가 그 같은 문학적 업적을 이룩하기까지 그의 6세 연상의 부인「프리다·로렌스」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 또「프리다」는 그와 결혼하기 전까지 「로렌스」의 「노팅검」대학시절 은사였던 언어학자 「어니스트·위클리」의 부인이었었다는 사실도 「D·H·로렌스」를 즐겨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이야기다.
「프리다」는 「로렌스」가 죽은지 4년 후인 34년 그와의 「로렌스」를 엮어 책으로 출판한 일도 있지만 이들의 애정생활은 아직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이 있다.
따라서 최근 「지오프리·스켈톤」에 의해 독일어로 쓰여지고 「로버트·루카스」에 의해 영역된 『프리다·로렌스…프리드·리히트호펜과 D·H 로렌스 이야기』는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끌고있다.(바이킹사 간·10달러)
물론 이 책도 이들의 애정의 전모를 파헤치는데 있어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세부적인 묘사에 있어서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출간한 직후 「루카스」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속의 「레이디·채털리」, 『사랑하는 연인들』속의 「어슐러·브랑그웬」, 『아론의 지팡이』속의 「태니·릴리」, 『캥거루』에서의 「해리에트·소머드」, 『장식된 뱀』에서의 「케이트· 레슬리」등 작품 속의 여주인공들이 「프리다」의 전부 혹은 일부를 현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이 책은「D·H·로렌스」의 작품연구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리다」는 전통적인 독일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청교도적인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하이틴」의 나이에 이르면서 그녀는 많은 젊은이들과 교류를 가져 사교계에서도 꽤 이름이 알려지게 됐는데 이 무렵 사랑에 빠지게 된「어니스트·위클리」라는 이름의 언어학교수와 1899년 결혼했다. 이때 그녀의 나이 20세. 그로부터 10여년 동안, 정확히 말해서 1912년 3월 「로렌스」가 「위클리」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까지 이들의 결혼생활은 평탄했다.
이때 「로렌스」는 독일의 어느 대학강사자리를 얻는데 「위클리」의 도움을 받고자 그를 찾아 왔었는데 「위클리」는 「프리다」에게 「로렌스」를 「젊은 천재」라고 소개했다.
이 무렵 「프리다」는 10여년 동안 변함없이 일관돼온 결혼생활의 권태감에서, 「로렌스」는 모친의 사망에 따른 허무감에서 피차 정신적인 붕괴과정을 걷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들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시작됐고 곧 애정으로 발전했다. 서로가 환상 속의 연인을 발견한 것이다. 「로렌스」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로는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여자다. 자네는 그 같은 여성을 일평생 만날 수 없을 것이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썼으며 「프리다」에게는 『영국을 통틀어 뒤져봐도 당신 같은 놀라운 여성은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프리다」는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로렌스」와 함께 애정의 도피행각에 올랐다. 이들은 영국을 떠나 독일·이탈리아·오스트리아」등지를 건전하다가 영국으로 돌아왔으며 뒤이어 미국·멕시코·오스트레일리아·스리랑카·뉴맥시코·카프리 등지로 목적 없는 여행을 계속했다. 이들의 방랑생활은 「로렌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됐는데 놀라운 일은 이들의 오랜 방랑생활 중 빈곤·죄의식·불화 따위가 끊임없이 엄습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렌스」는 잠시도 쉬지 않고 창작에 몰두했다는 사실이다. 작품에만 열중한 것이 아니라 「로렌스」는 그와 만날 때까지 귀족출신으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던 「프리다」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올더스·헉슬리」가 쓴 글 가운데서 잘 표현되고있다. 『그는 요리도 하고 바느질도 하고 빨래도 하고 심지어는 수놓는 일까지 했다. 그들의 집은 「로렌스」가 늘 청소에 신경을 쓰고 있었으므로 항상 깨끗했다.』
그러나 일관된 애정을 위한 이들 두 사람의 한결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로디·브레트」「마벨·다지」등「로렌스」를 흠모하는 여러 여성들 때문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더욱이 말년에 「로렌스」가 폐결핵으로 마침내 성 불능에 이르게되자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하려는 「프리다」의 태도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프리다」는 「로렌스」가 죽은 후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운데 하나였던 「존·미들던·머리」와 세 번째로 결혼했는데 이 같은 사실은 「프리다」의 일면을 잘 나태내주는 것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장식된 뱀』『캥거루』등 일련의 작품들이「로렌스」 말년에 쓰여졌다는 사실은 그 경과야 어쨌든 「프리다」의 절대적인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신간『프리다·로렌스…프리드·리히트호펜과 D·H·로렌스 이야기』는 결론 짓고 있다. <로스엔젤레스·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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