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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있는 「바캉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예년보다 빨리 닥쳐온 무더위에 장마를 생략해버린 가뭄 폭염의 장기화까지 겹쳐 올해엔 또한 예년에 없이 과열된 「바캉스·붐」이 일고 있다.
오늘은 입추이지만 더위는 아직도 좀처럼 기승을 죽일 것 같지 않고, 8월 한달은 내내 방학과 휴가의 달이고 보면 바야흐로「바캉스·붐」은 그 한가위를 맞고있는 셈이다.
치안국의 집계에 의하면 지난7윌 한달 동안「바캉스」로 나들이 한 인파는 지난해 동기에 비해 35%가 는 5백81만명을 헤아렸다고 한다. 이러한「붐」이 그대로 8월에도 지속된다면 올해의 「바캉스」나들이 인구는 아마도 1천만명을 훨씬 넘게 되리라는 결과가 벌써부터 예측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바캉스」인파가 산과 바닷가의 몇 개 피서지에 몰리게 되니 도처에서 여러 가지 불미한 「바캉스」사고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은 자연지세라 할 것이다. 그 결과 몇 개 해수욕장은 서울이나 부산의 가장 번잡한 도심부를 그대로 이직해 놓은 듯한 양상마저 보여주고 있다고 전한다. 애초에 도시의 과밀·소음·공해를 피하여 심신의 상쾌한 재생(레크리에이션)을 위해 떠났던「바캉스」나들이가 피서지에 가서 다시 또 하나의 도시적 과밀과 소음과 공해를 만나 피로만 얻고 돌아온다면 도시 「바캉스」나들이의 의의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된다.
어떻게 보면 이같이 대중적인 규모에 있어서의「바캉스」란 그 자체가 우리들에게는 생소하고,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스스로의 과거 경험이나 본받을 수 있는 전통의 선례가 없는 곳에 갑자기「바캉스·붐」이 불어닥치니 사람들은 저마다 유행을 좇아 너도나도 남들에 뒤질세라 산과 바다로 나들이 인파에 휩쓸리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종의 타자 지향적인 「바캉스」행태이다.
그러나 「바캉스」란 무엇보다도 나의 「바캉스」요, 나를 위한 「바캉스」이다. 나 자신의 보다 능률적이고 보다 창의적인 일을 위해서 잠시 일상적인 일에서 몸을 쉬고 머리를 식혀 본다는 데에 「바캉스」의 뜻은 있다. 남이 바다에 간다니 나도 바다에 가고, 남이 산에 간다니 나도 산에 가서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일보다 고된 곤비만 얻고 온다면 그것은 「난센스」이다. 몸을 쉬고 머리를 식히는 데에 반드시 산이나, 바다로 가야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일에 개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휴식에도 개성이 있어야 좋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또 한가지 요즈음의 빗나간「바캉스」과열현상을 보면 그 배경엔 일과 놀이에 대한 낡고 그릇된 고정관념이 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이란 괴로운 것이요, 놀이는 즐거운 것, 일은 남을 위한 것이요, 놀이는 자기만을 위한 것, 그래서 일은 선한 것이요, 놀이는 악한 것이라는 이원론이다. 그 결과 기왕에 놀이란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동기의, 어딘지 좀 떳떳하지 못한 행위라 하는 잠재적인 의식이 「노세 노세」의 자포자기적인 탈선행위로 내닫게 했다.
그러나 일이란 반드시 괴로운 것이 아니라 동시에 즐거운 것일 수도 있고 그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인즉 자기를 위한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놀이도 또한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결코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어야 한다.
결국 참된 「바캉스」를 즐기기 위해선 평소에 일을 놀이처럼 즐기고, 여가의 놀이 가운데서도 일을 하는 생활철학·생활태도를 저마다 터득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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