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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열무김치를 항아리에 눌러담고 손을 헹구다가 오른손등에 콩알만한 사마귀를 눌러본다. 언제부터인가는 기억에 어둡지만 오른손의 사마귀는 꽤오래 나와 함께 있었다.
『어른이 돼 가지고 그게뭔고.』 때로 아빠에게 듣는 핀잔이려니와 나 자신보아도 예뻐보이지는 않는다.
일하는 애를 내보내고 지금 넉달째, 가끔 게으르고 싶은 마음이 한쪽에서 고개를 내밀지만 쓸고 닦고 그 틈에 내 손톰은 비뚜릅히 닳다가 부러지기도 한다. 섬섬옥수라고까진 하지않아도 그런대로 희고 부드러운 손을 가졌었는데 아이하나를 낳은것 말고는 별로 이룩해 온것도 없으면서 내 손은 지금 얼굴보다 더 늙어있다.
한창 예민했던 단발머리였을 때 서울서 대학을 갓 졸업한 자그맣고 예쁜 국어 선생님이 이 다음 마디지고 억센 손일망정 부지런한 여자가 되어 만나자는 얘기를 해주셨고 그말은 지금껏 내 가슴에서 여러의미로 되살아나곤 한다.
오늘 집안일을 끝내고 TV 미용 강좌에서처럼 오이를 갈아 즙을 내고 「파크」재료를 준비했다. 거울앞에 다가앉아 어설프게 얼굴에 펴서 바르고 있노라니 아들녀석이 머리서부터 온통 모래를 뒤집어 쓰고 들어온다.
나는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지른듯 황급히 얼굴을 씻고 아이의 머리를 감기면서도 어쩐지 자꾸 부끄럽다.
이다음 미운 내 손에 귀하고 훌륭한 보석을 끼워주마던 아빠의 약속은 아직도 공약(공약)일수 밖에 없고, 지난날 여학교 선생님이 원하셨던 부지런한 손의 여자도 아닌 지금의 나에게 손은 더욱 많은 땀과 힘을 쏟아야할 것이고 나는 내손에 더 애정을 부어야겠다. 이따 시장에 나가면 고무강갑이라도 하나 사와야겠네.
정순희(서울 관악구 신림동 30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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