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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한 즉결심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5천원 이하의 벌금 또는 29일 이하의 구류나 과료에 처해질 범죄사건을 즉결 심판하는 즉심제도의 운영에 많은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즉결심판은 대부분 하오에 개정되기 마련인데, 피의자는 재판을 받을 때까지 평균 20여시간을 기다린 후에 30초 내지 3분의 재판을 받고 풀려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재판자체는 이처럼 간단히 ?끝나는데 이를 위한 대기시간이 엄청나게 긴 것이 말썽이다.
경찰에 보호되어 위생시설조차 좋지 않은 보호소에서 10∼24시간을 대기하였다가 호송 차로 즉결재판소에 넘겨진 뒤에도 5∼8시간 재판을 기다려야 한다면 이러한 즉심제도 운영은 어느 모로나 심한 인권침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즉결심판의 대상자는 거의 대부분이 경범죄처벌법 위반자이고, 이밖에도 도로교통법 위반자나 행정법규위반자들이 섞여 있다. 이들 중에서도 운전사들의 교통법규위반에 대해서는 교통경찰관이 스티커를 발부하여 즉결심판소에 가서 벌금을 물게하고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경징한 범죄인 야간통금위반자들이 1천여원의 벌금을 물기 위하여 20시간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이라고 하겠다.
이 무더위 속에서 20여 시간이나 악취가 나고 비좁고 소란하기 이를데 없는 보호실에 남녀의 구별 없이 감금되어 밤을 새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인간이하의 취급이다. 부산의 모 판사는 섭씨30여도의 무더위 속에서 20여시간씩 기다린 즉심피고인에게 무더기로 선고유예처분을 하였는데 이 판결은 그들이 받은 판결전 고통을 감안한 타당한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즉심의 경우에도 궐석재판을 할 수 있는 길은 법률상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경찰서장은 조심피의자를 신병을 확보해서 고심을 제구할 것이 아니라 피의자의 신원을 증명할 주민등록증 등을 회수해서 궐석으로 즉심에 회부하는 길을 연구해야할 것이다. 즉심강구자 중 통금위반자 등에 대해서는 1천8백원 정도의 벌금을 미리 내고 석방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인데 이 제도를 보편화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있어 마땅하다.
과거에 경찰은 즉결심판사건에 대하여 통고 처분을 하는 방안을 연구한바 있었는데 이것도 좋은 착상이다. 일부에서는 궐석재판이나 통고처분제도는 부정스러운 뒷거래를 조장할 우려가 있으며 경찰관이 법관이 될 우려가 있다고 하여 반대하는 것 같으나 즉심 해당자를 위하여서는 돈 몇천원 때문에 20여 시간의 사실상의 구류처분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는가. 경찰처장의 통고처분도 그 자체가 법적으로 확정력이 있는 것이 아니고, 본 재판이나 즉결심판을 받기를 원하지 않고 이에 응하는 경우에만 확정력이 쓴 것이기에 헌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찰서 단위로 소규모의 법정을 열어 판사가 순회 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법관부족과 예산부족 때문에 실효성을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법관이 순회하여 경찰서장실 등에서 선고하는 것은 법원의 권위를 실추케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즉결심판 절차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등기소마다 법정을 두어 치안판사를 상주케 하여 구속영장 발부사건과 즉결심판 사건을 담당케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치안판사는 현재와 같이 1일 1회 개정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1일 4회 정도쯤은 개정하고 소액사건 등도 심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판사의 증원과 법정의 증설이 필수적인 전제가 될 것이다.
오는 9월1일부터는 소액사건 심판법이 효력을 발생학 되는데 이를 위해서도 법정의 증설과 판사의 증원은 불가피하다.
또 대법원은 치안판사와 간역법원판사의 확보를 위하여 사법시험합격자의 수를 늘려야만 한다.
판사의 증원이 이루어져 치안판사제도가 실시될 때까지라도 법원과 경찰은 즉심대상자가 신속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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