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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외교각축장 시베리아 자원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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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심각한 최근의 세계적 자원부족 상황을 배경으로 강대국간에는 올 들어 자원외교가 부쩍 활기를 띠고 있으며 그러한 움직임의 모델·케이스로서『시베리아 개발구상』이 서서히 표면화, 동북아시아 지역에 미묘한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소련 령 시베리아는 무진장한 미개발자원의 보고. 특히 에너지 위기가 경고되고 있는 상황에서「석유의 바다」로 불리는 시베리아의 석유자원은 미·일·서독 등의 관심을 끌어 그 개발구상을 싸고 미·소·일·서독간에 허허실실의 외교적 흥정이 불꽃을 퉁기고 있으며 이를 견제하는 중공의 움직임까지 곁들여 혼전의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동경=박동순 특파원>
지상에 남겨진 최후의 지하자원을 안은 시베리아-소련 극동=는 소련 총 면적의 3분의 1인 6백 20만 평방 ㎞로서 광물·연료·전력 및 목재·피혁·해양자원 등을 풍부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겨우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됐을 뿐이다.
제정 러시아 때부터 줄곧 소련의 공업 중심지는 우랄산맥 이서 지역이었으며 에너지 조달도 유럽·러시아지역에 전면적으로 의존해 왔다.
그러나 카스피 해 연안의 바쿠 유전과 볼가강 유역의 타다르 바시키르 지역 등에서 석유자원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개발의 손길은 서서히 동진, 2차 대전 이후에 본격화 한 시베리아 탐광조사를 통해 숱한 매장자원을 찾아냈으며 모스크바에 가장 가까운 서 시베리아의 튜메니 지역을 우선 중점 개발키로 결정했다.

<8할이 석유 개스 매장>
59년부터 시작된 7년 계획에 따라 활발한 볼링작업을 실시한 결과 이 지역의 8할에 걸쳐 석유 개스 자원이 매장돼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소련이 이렇듯 시베리아 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은 71년부터 스타트한 현행 5개년 계획의 중점 목표가 국민의 물질적·문화적 생활수준 향상을 보증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공업생산을 늘리자면 에너지원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소련은 왜 이 지역을 서방측과 공동개발 하려는 것인가?
그 첫 번째 이유는 서방측의 풍부한 자금력과 우수한 기술을 적극 도입,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전후 한때 급속한 성장을 이룩해 온 소련 경제는 58년 이후 줄곧 정체 상태에 머물러 50년대에 10%이상이었던 공업생산 증가율이 60년대에 10%이하로, 70년대에는 더욱 하강, 금년에는 낮추어 책정된 목표 5.8%도 달성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이 때문에 소련은 서방측 자금과 기술을 과감히 도입, 정체상태에서 탈피키 위한「서방경사」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새 에너지 공급에 부심>
둘째 이러한 공업생산 부진에 곁들여 작년에는 농업생산도 극히 부진, 보유금을 대량 매각해 가면서 3천만t의 식량을 수입함으로써 12억 루블의 출초를 기록했던 무역수지가 72년에는 6억 루블의 입초로 역전, 외화사정이 극도로 악화했다. 이 때문에 소련은 서방측이 희망하는 지하자원을 개발수출 해서라도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련은 막대한 자금이 든 시베리아 개발에 서방 측 자금을 도입, 활용함으로써 자원개발을 촉진하고 동시에 서방측의 최신의 기술혁신 성과를 도입, 경제를 효율화하고 노동 생산성을 높여 새로운 고도성장의 계기를 잡으려는 것이며 그 반대급부로서 국내의 천연 개스 및 석유등을 수출, 장기신용 결제에 충당할 생각이다.
한편 이러한 소련 측의 시베리아 공동개발구상은 자원부족으로 고민하는 서방 공업국에도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근동 아프리카 지역의 정정 불안으로 석유자원 확보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시베리아는 극히 유망한 새 에너지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지하자원 공동개발을 위한 상호협력의 필요성은 불신해소와 긴장 완화 움직임의 계기가 된 동시에 그 자체가 해빙 무드를 촉진하는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있다.

<서독에 추파, 미·일 견제>
그러나 막상 공동개발 교섭에 임하는 각국의 보조는 반드시 일치되지 않고 있다. 우선 소련으로서는 가급적이면 유리한 조건으로 안결키 위해 미국과 일본을 상대로 각개격파 작전을 펼쳐 미·일이 공동보조를 취하지 못하게 교란하고 있으나 나아가서는 서독에도 추파를 던져 세계 최대의 석유 소비국인 미·일을 견제하려 들고 있다.
동시에 미국과 일본도 대 소비국으로서의 공통된 이해관계 때문에 정부·민간 레벨의 다양한 접촉을 통해 일단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거듭 확신하고는 있으나 지금까지 원유수입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은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 서려는 희망과 시베리아에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배경으로 미모한 독자적 포석을 병행시키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주시하고 있다.
한편 방대한 시베리아 지역과 국경선을 접하고 있는 중공은 시베리아 개발이 소련의 군사력 증강에 이어질 것을 우려, 대경유전개발수출을 일본측에 제의하고 발해만 대륙붕 석유자원 개발 구상을 밝히는 동 시베리아 공동개발 구상을 측면에서 적극 견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국가 이해 얽혀>
동시에 미국과 일본으로서도 동지나해 해저에 매장 됐을 것으로 유력히 추정되는 석유자원에 유의하고 있기 때문에 균형을 잃는 지나친 대 소련 경사를 자제, 대소·대 중공 작전을 병행시키고 있는 징후가 여러모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중공의 대륙붕 개발 계획은 다시 한국과의 대륙붕 문제를 비롯, 현재 일본·대만간에 계류중인 첨각열도 영유권 문제로까지 파급해 갈 가능성이 짙고 따라서 세계적인 석유자원 확보 경쟁은 특히 동북아 지역에서 대소국이 뒤얽힌 복잡한 기상도를 그려내고 있다.
때문에 지난주 일본에 온 미 캘리포니아 대학의 아시아 문제 전문가인 스칼라피노 교수는 앞으로 나타날 선진국들의 치열한 천연자원 쟁탈전이 이들 국가간의 위험한 적대 관계를 낳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적절한 협조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모처럼 종식되려는 정치적 냉전에 대신해서 경제적 냉전이 표면화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시베리아 공동개발 계획은 이러한 협조 움직임의 테스트·케이스이며 일본의 조야는 다나까(전중)수상의 방미(7월말), 방서독(10월4일) 방소(10월 8일)를 통한 다각적 수뢰 접촉이 이 계획의 금후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클로스업 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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