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魚 우리 줍쇼" 고교감독에 넙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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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우(경북사대부고.라이트)-김요한(광주전자공고.레프트)-임시형(인창고.레프트)-한선수(영생고.세터)-.

서울 A대학의 A감독은 올해 첫 고교대회인 춘계 전국남녀중.고배구연맹전이 열리는 강릉에 도착해 수첩에 적어놓은 이름들을 다시 훑어봤다.

A감독은 배구계 선배인 B대학 B감독에게서 들은 "스카우트 한번 잘 하면 4년이 즐겁다"는 말을 되새기며 대회장인 강릉종합실내체육관에 들어섰다. 체육관 입구에서 경북사대부고 이종렬 감독과 마주치는 순간 A감독은 느낌이 좋다고 생각했다.

스카우트 대상 1순위로 점찍은 박철우를 키운 이 감독을 약속도 안했는데 만나다니…. A감독은 냉큼 달려가 이 감독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구, 감독님. 우리 학교 한번 밀어주십시오." 이 감독은 빙그레 웃으며 "오랜만입니다"라는 의례적인 인사말만 한다.

다른 고교 감독이 보면 공연한 오해를 살까 싶었던 A감독은 이 감독에게 저녁식사를 모시겠다며 시간약속을 잡고는, 일단 임시형 스카우트 건부터 챙기기로 했다.

사실 레프트로는 김요한이 더 탐나지만 이미 C대학이 오래 전부터 그에게 공을 들였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A감독은 '상도의(商道義)' 차원에서 입맛을 다시며 눈치만 보고 있다. 혹시 일이 틀어지면 그때 가서 나서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A감독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날 경기가 없었던 인창고 이상렬 감독을 경포대 부근 횟집에서 만났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인연도 있어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임시형이, 저 주세요." 순간 이 감독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스친다. "미안해서 어쩌지요, D대학으로 거의 기울었어요. 혹시 시형이 때문에 다른 선수 놓칠까봐 미리 얘기하는 겁니다."

무려 4년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어디 그리 쉽게 되겠나. 식사를 마치고 체육관으로 돌아오자 벌써 E대학 감독을 제외한 대학 감독 전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 영생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지만 피차 신경은 곤두서 있다. 다른 감독 수첩에도 박철우-김요한-임시형의 순서로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뒤 A감독은 강릉에서 유명하다는 한 횟집에서 이종렬 감독을 만났다. 그런데 이 감독은 계속 세상 돌아가는 얘기만 할 뿐 박철우 얘기는 도통 꺼내지 않는다.

세 병째 소주를 비운 뒤 볼 일을 보러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입구에서 전날 저녁 자신이 만났던 고교 감독이 B대학 B감독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모른척 하고 술자리로 돌아왔다.

당초 예정했던 2박3일이 지났지만 이렇다할 소득이 없는 A감독은 하루를 더 머물기로 했다. 이제는 더 늦출 수 없다는 생각이 든 A감독은 적극적으로 선공에 나설 참이다. 이런 식으로-.

"감독님, 그 아이 저 주시면 선수 두명 더 받겠습니다."

"감독님, 웃지만 마시고 진짜 원하시는 걸 말씀해보세요."

강릉=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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