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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치 총리 피살된 세르비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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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란 진지치(50) 세르비아 총리가 12일 괴한의 총탄에 쓰러짐에 따라 '발칸의 화약고' 세르비아가 또다시 불안에 휩싸이고 있다. 유럽에서 현직 최고 지도자가 암살되기는 1986년 올로프 팔메 전 스웨덴 총리 이후 처음이다.

독일의 대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를 사사,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대학교수 출신인 진지치는 친서방 민주화 개혁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았다. 그러나 자신에게 반대하는 세력은 가차없이 제거, 정적도 많이 만들었다.

◆누가 쏘았나=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전 경찰 특수부대장으로 현재 '제문(Zemun)사단'이란 조직범죄단체를 이끌고 있는 밀로라드 울레멕. '레기야'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울레멕은 2백여명의 폭력배를 이끌며 마약밀매에 손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특히 1999년 야당지도자인 부크 드라스코비치 암살미수사건을 비롯, 지금까지 50여건의 암살사건에 연루돼 있다. 최근 진지치가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 이들이 보복에 나섰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적'이 된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전 유고 대통령도 용의선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최근 진지치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권력투쟁을 벌이다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편 자르코 코라치 부총리는 13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총리 암살에 연루된 혐의로 수 명이 경찰에 체포됐다"며 "이들은 총리 암살의 배후로 거명된 한 범죄 단체 소속"이라고 밝혔다.

◆후계자는 누구=진지치 피살로 세르비아는 권력의 진공 상태에 빠졌다. 코슈투니차가 지난해 연거푸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고도 투표율 미달로 낙선한 뒤 세르비아엔 대통령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진지치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또 한번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진지치의 측근 가운데 조란 지브코비치 전 경찰장관과 네보이사 초비치 부총리 등이 부상하고 있다. 코슈투니차의 권토중래도 관심거리다.

◆세르비아는 어디로=누가 권력을 잡든 당분간 진지치의 친서방 개혁노선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유럽연합(EU)이나 미국을 거스를 만한 정치세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도력의 공백으로 이 같은 개혁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다.

특히 민족주의 세력의 발언권이 커질 경우 다시 외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유럽의 본류에 편입하려는 신생 세르비아에 커다란 타격이 될 것이다.

지난달 출범한 느슨한 형태의 국가연합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의 정부 구성도 늦춰질 전망이다. 코소보 문제에 강경했던 진지치의 사망으로 코소보 사태가 다시 재연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최근 알바니아가 다시 코소보 문제에 적극 개입하고 있어 '발칸의 화약고'가 재폭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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