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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사가 앞장선-입시생 「헌팅」 작전|일부 고교·대학 입시 문제 누설 사건 안팎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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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돈을 받고 입시 문제를 팔았다』- 세칭 일류 학교 입학을 둘러싼 입시 부정이 없진 않았지만 대검 특별 수사부에서 수사중인 K고교 등 입시 문제 누설 사건은 현직 선생들이 미련한 수험생을 「헌팅」했다는데 크게 이색적이었다. 선생들이 앞장선 입시생 「헌팅」 작전-. 그것도 딱이 대상을 공부 못하는 부잣집 자제만 골랐다.

<학부모 허영 노려>
지난 며칠동안의 수사에서 관련 교사 7명과 「브로커」 조직의 3명 등 모두 10명을 구속한 대검 특별 수사 본부 강용구 부장 검사는 『이번 사건은 일부 돈 많은 학부모들의 그릇된 허영을 악용한 입시 「브로커」들에 의해 빚어진 것으로 이러한 범죄를 가능케 한 사회 풍조의 개선이 아쉽다』고 했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여일전. 국내에서 손꼽는 모 재벌의 딸이 지난봄 일류 여고에 수위를 다투며 입학했는데 입학 직후 학급 편성을 위한 시험을 치르니 최하위의 성적을 보였다는 「쇼킹」 정보를 입수한 직후로 알려졌다. 거의 동시에 후기 중학에서 중이하의 성적이 있던 L군이 세칭 일류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들어갔다는 정보도 얻었다는 것이다.
10여일 동안의 내사 끝에 상습적인 입시 문제 누설 「브로커」 조직이 덜미를 잡히고 이들과 학생들을 연결시켜주던 시내 각급 학교 교사들의 면면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입시 전날 밤 학습>
경찰 수사에 따르면 이 조직은 지난 수년동안 시내 고교 및 대학교의 시험 문제를 미리 뽑아내 조직적으로 학생들에게 팔아 왔는데 1차 수사에서 금년도 입학 때만도 30여명을 부정 응시케 하여 약 4천만원에 이르는 돈을 거둬들인 것을 밝혀냈다.
이 조직의 두목 격인 오모가 4일 붙잡혀 시험 문제 누설 경위가 정확히 밝혀질 테지만 검거된 하부 조직의 진술, 알선 교사 및 돈을 주고 문제를 산학 부모들의 진술을 종합해보면 두목 오는 입시 3, 4개월 전부터 대상 학교 직원 및 관계 공무원과 접촉해 왔다는 것이다.
시험 바로 전날 대상 학교의 시험 문제지를 입수한 오가 사진 복사만으로 떠서 「브로커」 박제민∼조남호 등을 거쳐 「그룹」 지도 가정교사나 알선교사에게 넘겨주면 이들은 자기가 맡은 학생들을 개인 또는 「그룹으로 불러 학습시킨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관련, 검찰 조사를 받은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소개한 교사가 시험 전날 밤 느닷없이 불러내 차에 태우더니 시내를 뺑뺑 돌다 어느 집으로 데려가 시험 문제지를 내주며 그대로 외라고 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 학생들은 다시 부모들에게 인도되었으며 시험 직후 『지난밤 익힌 그대로 출제 됐다』고 확인되면 돈을 받아 갔다는 것이다.

<올 봄 30여명 입학>
이들 조직은 철저한 점 조직으로 두목 오를 제외한 하부 조직이 모두 검거되었지만 공범끼리는 얼룩조차 모르는 사이로 모두 진짜 이름도 모르는 두목 오의 지시에 따라 다방이나 기원에서 접선, 그때그때 움직였을 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이들의 수금 방법은 「브로커」∼알선 교사 등을 통해 미리 약정된 금액을 지점 은행에 입금케 한 다음 예금 통장을 받은 뒤 시험 문제지가 전달되거나 합격이 확인되면 돈을 빼낼 수 있게 도장을 받는 등 치밀하고 악랄한 방법을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 입학의 댓가는 당초 1백만원으로 정해졌으나 하부 조직이 자기 몫을 붙이고, 알선 교사가 또 최저 60만원에서 2백만원까지의 「커미션」을 붙이는 바람에 실제로 학부형이 내는 돈은 2백만원에서 최고 3백50만원까지로 밝혀졌다.
이들이 노린 대상이며 부분 실력은 낮으나 부유한 가정들로 시험 문제를 맡겠다는 알선 교사의 소개에 쾌히 응한 경우가 많으나 몇몇은 돈이 모자라 거절하는 바람에 교사들의 협박까지 받은 일도 있다고 했다.
어느 학부형은 2백만

<남편 몰래 돈 마련>
원을 내면 시험 문제를 주겠다는 교사의 제의를 거절했다가 『비밀을 듣고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재미없다』고 자식의 진학 관계를 들고 협박하는 통에 남편 몰래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했으며, 다른 학부모는 교사들의 으름장이 무서워 약정 기일보다 두달이나 늦게 곗돈을 받아 주었다고 말했다.
범죄 조직은 미리 빼낸 각 학교의 시험 문제를 학습시킬 때 만점이 되어 주목받는 것을 막기 위해 1, 2개씩 틀린 답을 쓰도록 했는데 응시 학생들이 이를 잘 듣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된 학생 중에는 수석 합격의 영예까지 차지한 경우가 생겨 수사관들을 아연케 했다.
또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돈을 주고 문제지를 사서 합격은 했으나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실력에 비추어 과분한 입학에 가책을 느끼고 동교를 거부하거나 가출을 꾀하기까지 했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누설 경위에 관심>
검찰은 이제까지의 수사에서 유출된 시험 문제지가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과정, 이에 거래된 돈의 액수 등에 대한 조사를 일단락 짓고 누설 경위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를 진행, 『2, 3일 내로 관련자의 전모를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대검 특별 수사부에는 하루에도 4, 5차례씩『××학교에 실력이 형편없는 학생이 들어갔다』는 내용의 전화가 걸려와 수사과를 당황케 하고 있다.
『무릇 시험이란게 실력의 우열을 가리는데 큰 뜻이 있기는 하나,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합격을 시켜야겠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일류병」의 허영이 교육적으로 승화되지 않는다면 당국의 수사는 한낱 경고에 그치는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라고 강 부장 검사는 말하고 있다. <정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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