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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하나에 손작업 50만 번 … 펜화로 그린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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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영택 작 ‘해인사 일주문’, 종이에 먹펜, 2007.

세계에서 가장 가는 펜촉의 굵기는 0.1㎜. 이 펜촉을 사포로 갈면 약 0.03㎜가 된다. 이 펜촉으로 1㎜안에 선 5개를 그을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에서 무념무상으로 선을 그을 뿐이다.

 펜화가 늘샘 김영택(68)씨는 “때로 한숨부터 나온다”고 털어놓는다. 불경(佛經)을 사경(寫經)하는 마음으로 한 획 한 획 철필을 그어갈 뿐이다.

 김영택씨는 서구에서도 명맥이 끊긴 펜화의 전통을 우리 미감으로 재창조한 ‘한국적 펜화’의 명인으로 손꼽힌다. 특히 사라지거나 변형된 한국의 전통 건축과 문화재를 치밀한 펜화로 되살리는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다. 현장 사생을 기본으로 50만 번 손작업이 가야 겨우 한 점 완성될 만큼 고단위 품이 드는 일이라 보는 이가 질릴 정도다.

 하루 온종일 그렸는데도 마음먹은 바탕 종이의 십분의 일을 채우지 못할 때가 많다는 작가는 “이 정도의 노력이니 건물의 혼을 담는다는 표현이 가능해지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펜화, 한국 건축의 혼을 담다』(서울셀렉션)는 김영택씨가 지난 10여 년 전국을 돌며 기록한 한국 전통 건축물 도록이다. ‘건축, 역사를 품다’ ‘건축, 문화를 담다’ ‘건축, 종교를 담다’ 3장으로 나눠 세밀 펜화 91점을 담았다. 서울 광화문부터 충북 진천군 보탑사 3층 목탑까지 현장에서 직접 보는 듯 감흥이 일렁인다. 건축물마다 소사(小史)와 내력을 실어 ‘펜화 기행’의 맛을 살렸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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