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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꿈꿀 때, 삶을 확 바꾸고 싶을 때의 길잡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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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28면

피터 드러커는 2002년 미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민간인 대상 훈장인 미국대통령자유훈장(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스킬(skill)이나 팩트(fact) 같은 영어는 우리 일상 언어생활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대화 중에 한·중·일 3국에서 ‘기업가정신(企業家精神)’으로 번역되는 ‘안트러프러너십(entrepreneurship)’이 끼어드는 경우는 흔치 않다. 발음도 철자도 고약한 이유는, 프랑스 경제학자 장바티스트 세이(1767~1832)가 1800년께 만든 ‘앙트르프르뇌르(entrepreneur·도모하는 자)’에 영어 접미사 십(-ship)을 붙인 말이기 때문이다.

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3> 피터 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안트러프러너십의 핵심이 ‘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체는 아니다. 원래 뜻은 비즈니스 관리자를 포함해 ‘어떤 일을 맡거나 시작하는 사람(entrepreneur)’이 갖춰야 할 ‘일 처리의 수단이나 수완’, 즉 솜씨(-ship, skill)다. 줄여본다면 안트러프러너십은 ‘일하는 사람의 솜씨’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우리말(왼쪽), 영문판 표지.

“특별한 재능·천재성 타고난 기업가는 없다”
오늘날 ‘일하는 사람의 솜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뭘까.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면, 혁신 분야의 고전으로 피터 드러커(1909~2005)가 지은 『혁신과 기업가정신(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1985·이하 『혁신』)에 눈길을 줄 만하다(우리말로는 『미래사회를 이끌어가는 기업가정신』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드러커 박사(독일 프랑크푸르트대 국제법·공법 박사·1931)에 따르면 고객을 확보하는 게 목적인 비즈니스에는 딱 두 개의 기본적인 기능이 있다. 마케팅과 혁신이다.

피터 드러커는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 제30대 캘빈 쿨리지 대통령(1923~29년 재임)이 “미국의 국업(國業)은 비즈니스다(The business of America is business)”라는 미국이 가야 할 방향을 꿰뚫은 멋진 말을 남겼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미국에서도 상업·비즈니스는 적어도 학계에서 ‘천한’ 것이었다. 고상한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제너럴모터스를 다룬 드러커의 『회사의 개념(Concept of the Corporation)』(1945)은 장사꾼을 기업가로, 장사를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한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혁신』은 기업가나 혁신에 대한 신화를 깬다. 우선 기업가적 성격·특질 같은 것은 없다고 드러커는 말한다. 특별한 재능·천재성을 타고난 기업가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딱 한 가지 성공적인 기업가의 공통점이 있다면 ‘혁신에 대한 헌신’이다. 드러커에게 혁신이란 부(富)를 창출하는 새로운 원천을 창조하거나 이미 있는 원천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혁신은 누구나 학습과 응용이 가능한 하나의 시스템이다. 바둑이나 골프처럼 말이다. 드러커는 혁신이 ‘빛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혁신은 ‘조직화된·체계적인·합리적인 작업’이기 때문이다.

드러커에 따르면 혁신의 원천이자 기회는 일곱 가지다. ①예상치 못한 성공이나 실패, ②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③감춰진 수요를 포착하는 것, ④산업이나 시장 구조의 변화, ⑤인구학적인 변화, ⑥인식의 변화, ⑦새로운 지식·기술의 발견이다. 이 중에서 ⑦이 제일 어렵다. 기술이 주도하는 혁신은 천문학적 돈과 수십 년의 세월을 요구한다. 어려운 길에 집착하지 말고 좀 더 손쉬운 ①~⑥에서 혁신의 길을 찾으라는 게 드러커의 권고다.

①의 경우의 대표적인 사례는 1957년 나온 포드자동차의 야심작 에절(Edsel) 자동차다. 에절은 미국 구어에서 “실패작, 쓸모없는 것, 팔리지 않는 상품”을 뜻한다. 포드는 에절의 참담한 실패에서 소비자의 구매가 소득 기준에서 라이프스타일 기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뼈저린 반성 끝에 나온 ‘대박’이 바로 ‘선더버드(Thunderbird·천둥새)’다.

②의 사례로는 IBM이 있다. 컴퓨터를 군사·과학 분야에 파는 게 IBM의 ‘이상’이었는데 진짜 수요는 비즈니스 업계에 있었다.

선구자인 드러커는 엉뚱하게 보이는 말도 많이 했다. 『혁신』에서는 벤처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지 말아야 하며 각종 문서 처리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드러커는 “깊이가 없다”는 비난도 받았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빗나간 예측도 많았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잭 웰치는 “그는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고 했다. 인텔의 공동창립자 앤드루 그로브는 “드러커는 내 영웅”이라고 했다.

얄궂게도 학계에서는 ‘외면’당하는 저자다. 수학·통계를 도구로 쓴 논문을 학술지에 많이 발표해야 대접받기 때문이다. 드러커의 방법론은 그의 방대한 문사철(文·史·哲), 음악·예술·종교 지식과 기업 현장 사례를 접합하는 것이었다. 그의 무대는 학술지가 아니라 단행본이었다. 그는 죽기 직전 39번째 책을 냈다.

실상을 따져보면 이렇다. 드러커가 수십 년 앞서 내놓은 측정이 가능한 ‘목표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s)’ ‘탈집중화(decentralization)’ ‘아웃소싱’, 비영리 부문의 중요성 같은 아이디어·개념을 후학들이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검증했다.

매니어급 독자들에게는 알려진 사실이지만 드러커의 저작에는 강한 종교성이 숨겨져 있다.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를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노동자가 회사의 부담이 아니라 자산이라는 드러커의 주장에 깔려 있는 것은 종교다.

노동자가 주도하는 혁신이 기업의 미래
드러커는 대형교회(megachurch) 현상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관심이 경영에서 종교로 바뀐 겁니까”라고 누가 묻자 드러커는 “그 반대”라고 대답했다. 종교와 제도에 대한 관심 때문에 경영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생물·심리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 가치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을 보는 사람. 그것이 성인(聖人)의 정의(定義)다.” 성공회 소속이었던 드러커는 덴마크 종교철학자 키르케고르(1813~1855)의 원전을 읽기 위해 덴마크어를 공부했다.

드러커는 뉴욕대(1950~71)와 클레어몬트대학원대학(1971~2005)에서 석좌교수로서 경영학을 가르쳤다. 사람들이 그를 “드러커 박사”라고 부르면 “그러지 말라”며 “나는 그저 늙은 신문기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드러커는 미국으로 이민 오기 전 독일과 영국에서 경제전문기자로 일했다. 남보다 빨리 세상의 변화를 감지한 비결은 그가 신문기자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혁신』은 최고책임자, 창업을 꿈꾸는 직장인들,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상관 때문에 고민하는 직장인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노동자들에게도 유용하다. 드러커는 ‘지식 노동자(knowledge worker)’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이다. 드러커는 노동 현장에서 이뤄지는 혁신에 기업의 미래가 있다고 봤다. 개인적 삶의 혁신을 도모하는 이들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안 읽으면 손해, 후회막급(後悔莫及).

사족을 붙이자면, 독일에서 처음 만난 드러커와 부인 도리스는 런던 중심가 피카딜리역 에스컬레이터에서 각기 상행선·하행선을 타고 다시 만났다. 양가 모친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골인한 드러커 부부는 70여 년을 해로하며 자식 넷, 손자·손녀 여섯을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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