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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김정은의 홀로서기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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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장성택 처형은 사실 예고된 것일 수 있다.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주어진’ 권력을 이른 시일 안에 ‘쟁취한’ 권력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심어놓은 군부 후견자 이영호 총참모장이 지난해 7월 해임된 건 그 전주곡이었다.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에선 내각총리인 최영림을 박봉주로 갈아치웠다. 군부와 내각을 김정은이 발탁한 젊은 엘리트로 채우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이제 노동당에서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고 김정은의 당으로 바꾸기 위해선 당연히 최대세력인 장성택이 타깃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장성택 제거는 3대 세습권력의 ‘홀로서기’라는 정치적 필요성에 따른 마지막 작업이었다.

 장성택 숙청은 예고된 것이었지만 속전속결의 공개체포와 공개처형의 원인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추가적인 배경 설명과 결정적 계기가 있어야 한다. 장성택의 소왕국은 이미 엘리트들에게 견제와 질시의 대상이었다. 당 행정부의 권한 남용과 과도한 이권 개입은 조직지도부뿐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총정치국, 심지어 내각에도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차에 장성택이 김정은의 지시에 저항했다면 이는 유일 영도를 거부하고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불복한 죄가 되고 모든 기관과 조직이 들고 나서 반당반혁명 종파행위와 국가전복음모로 몰아갔음 직하다. 세습권력의 속성에서 비롯된 장성택 제거의 필요조건이 엘리트 간 권력투쟁과 이권다툼이라는 사건적 계기가 맞물리면서 극적 처형의 충분조건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드디어 나 홀로 권력을 거머쥐게 된 김정은이지만 앞날은 여전히 불안하고 외롭다. 당장은 고개 숙이지만 양봉음위와 면종복배는 그대로일 것이다. 할아버지처럼 생사를 같이한 ‘만주파’가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처럼 20년 후계기간 동안 자기 사람을 만들지도 못했다. 이젠 모든 결정의 책임도 자신에게 돌아온다. 권력 안정성은 증대되지만 체제 안정성이 불안해지는 이유다.

 홀로서기 이후 김정은 권력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은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현실적이어야 한다. 일부 언론과 전문가처럼 사실 확인도 없이 각종 설을 확산시키며 군사정변이나 급변사태가 임박한 것처럼 요란을 떨어선 안 된다. 국정원의 보고대로 김정은 권력은 숙청 이후 신속하게 정상화·안정화돼 있다. 끔찍한 처형소식을 듣고 김정은 타도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것은 자유지만 실제 북한의 권력동향을 분석하는 것은 냉정한 현실에 근거해야 한다. 김정은 권력의 객관적 안정성은 인정해야 한다. 감정적 주장이나 주관적 희망만으로 북한을 들여다보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김정은 체제가 개방적 권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견인하고 이끌어야 한다. 김정은이 국제사회에 등 돌리고 심지어 중국의 눈치도 보지 않은 채로 내부 권력 다지기에만 집착하는 것은 위험스럽다. 김정은이 이른바 ‘자폐적’ 권력으로 질주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동유럽 체제전환이나 중동 재스민 혁명은 모두 독재였지만 개방과 교류에 노출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제사회에 개방되고 외부와의 교류가 있는 데서 민주화는 가능하다. 우리도 박정희 시대 세계경제에 편입되면서 개방과 교류와 국제적 규범이 확산됐기에 민주화가 가능했다. 김정은도 홀로서기 이후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발전이라는 정책적 퍼포먼스를 필요로 한다. 북·중 경협과 남북 관계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절대권력 김정은 체제가 대외 개방과 교류에 나서도록 이끌어야만 결국은 체제전환과 민주화도 가능해진다. 독재체제에 대화와 교류의 ‘창’이 필요한 이유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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