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본사 주섭일 파리 특파원 긴급입수 독점 연재|전택보<컷은 런던에서 전 사장이 손수 써서 전송된 것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소련의 교육은 초·중 고등까지는 의무이며 대학은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진학한다는 안내원의 설명이 있었다.
「레닌그라드」대학은 3층 건물인데 규모는 상당히 큰 것 같았으며 정문 위에는 붉은 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또 대학 맞은편에 큰 「돔」이 있는데 이것이 제소연 해군본부였다. 「버스」가 멎은 곳은 큰 동상 앞으로 모두들 내려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이곳저곳에 높이 솟은 사원들은 박물관 등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며 낡은 사원을 수리하는 광경도보였다.
소련이 종교를 부인하면서도 교회당만은 알뜰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역사적 유물을 자랑의 하나로 알고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달러」안 받는 신문장수>
관광 「버스」에서 내러 식당으로 들어가는 길모퉁이에 신문·잡지를 파는 가두판매대에 한글로『조선』이라고 씌어진 화보가 있기에 사려고 돈을 「달러」로 내니 소련화폐가 아니면 안 판다는 몸짓이기에 포기했다.
이러한 신문·잡지「키오스크」가 거리 곳곳에 많았으며 모두 노파들이 팔고있었다.
우리 일행이 들어간「레스토랑」은 그리 화려한 장식은 없었지만 전장이 높은 고전적인 건물이었다. 「웨이터」는 모두여자들인데 음식은 빨리 나왔다. 「메뉴」가 있어 고르는 것이 아니고 단일 「메뉴」이기 때문에 빨리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알콜」이 든 주류는 따로 돈을 내야 마실 수 있었으며 물 대신 이곳에서는 과일즙 같은 것을 마시는 것 같았다.
다음에 나오는 것은 「러시아·수프」이었다. 이 「수프」는 양이 굉장히 많았으며 우리가 먹은 음식 중 가장 맛있었다고 생각된다.
빵은 서구에서처럼 여러가지중류가 있었으며 쇠고기는 「비프스테이크」를 썬 것으로 양이 무척 적었다.

<「팁」주니 영어로「댕큐」>
그릇은 모두 사기그릇인데 소박하였고 「테이블」위에는 상보도 펴져 있었다.
한마디로 소련의 이「레스토랑」은 미국의 어느 시골 식당을 연상하면 된다.
식당에서 나올 때 「웨이터」에게 「팁」을 주니 뜻밖에도 영어로 『댕큐』하며 반갑게 받았다. 그런데 안내원에 의하면 소련엔 일체「팁」제도가 없다는 것이다.
하오에는 제정 「러시아」시절에 동궁이었던 박물관구경을 했다. 이곳을 모두 돌아보려면 며칠이 걸릴지 모를 큰 건물이었는데 중요한곳만 대강 설명을 들으며 돌아봤다.
그 화려·웅장함은 「베르사유」궁전을 연상시켰다.
외국관광객 뿐만 아니라 소련 사람 또는 학생들의 단체관람도 이날은 무척 많았다.

<이집트용 조각품 많아>
고대의 「이집트」「그리스」의 그림과 조각 등이 많았고 중세 종교적 예술품도 많은 것 같았다. 또 인상파 그림들을 진열한 방도 있었고 「피카소」방도 있었다. 「피터」대제가 쓰던 유품들도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왕관은 그 배경 조각들과 함께 그대로 진열했는데 관의 무게만도1t반이라고 설명되었다.
박물관을 구경한 다음 일단 배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7시에 다시「레닌그라드」에 상륙, 「오페라」극장구경을 갔다.

<2시간 걸린『칼멘』공연>
김 회장이 춤추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댄싱·파티」가는 게 좋지 않으냐』고, 농담으로 안내원의 동반을 요청했다가 불쾌하지 않게 거절당했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다.「레닌그라드」대 극장은 현대식 건물로 서울의 시민회관보다 훨씬 크고 또 화려한 것 같았으며 의자도 무척 편하고 좋았다.
이날의 제목은『카르멘』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입구근처에서 먹을 것을 파는데 「초콜릿」을 금색으로 싼 모양이 너무나 예쁘기에 손자들에게 주려고 몇 개 샀다.
그러나 이들은 선물용 포장을 해주지 않아 하는 수 없이 내 손수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좌석이 앞쪽이라서 가까이 볼 수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세 사람이 내 옆에 앉았는데 이들은 두 송이 꽃을 갖고 미리 들어와 앉아 있다가 1막이 끝날 때마다 「발레」를 한 여자에게 증정하는 것이었다. 막이 끝날 때마다 박수는 장내가 떠나갈듯 요란했고 주인공들은 들어갔다 다시나와 답례하는 모습이 서울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8시10분전에 시작해서 10시10분전 만 2시간만에 끝났다.
제2일은 「피터」황제의 하궁 소재지 이름인 「표트르프로가」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채소 밭 등은 사유재산>
아침을 선상에서 먹고 10시에 배를 떠나 어제 본 지방을 돌아서 소련에서 가장 큰 고무공장이라는 붉은 벽돌 건물과 또 가장 유명한 기계공장이라는 곳을 지나가면서 설명을 들었으며 「레닌」의 동상 앞을 지난 후 그 부근에 새로 지은 큰「아파트」를 보았다.
안내원의 설명은 노동자들을 위한 「아파트」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위한 「아파트」는 아직도 부족해서「아파트」안에 각자가 변소·목욕탕을 갖는 게 아니라 공동변소·공동목욕탕을 사용하는 곳이 많으며 여러 식구가 한 「아파트」를 같이 쓰는 경우가 많다고 안다.
「레닌그라드」시내에는 5·6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없었으나 교외에 나오면서 10여 층 건물도 많이 보였다.
2차 대전 당시에 독일 군이 「레닌그라드」의 4,5㎞까지 진입해서 29일간을 점령하고 있었으나 끝내「레닌그라드」를 함락하지 못했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다.
이날은 교외로 나가서 수십㎞떨어진 하궁을 보러 가는 도중 농촌풍경도 볼 수 있었다.
길옆에 사과나무 농장은 집단경영 농장인데 개인으로도 소규모로 채소 같은 것을 심을 수 있는 사유재산은 허용하고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했다.<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