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타프시스템' 정재영 사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25면

동네 문방구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로봇 모형과 탱크 장난감.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유리에 코를 붙인 채 넋을 잃고 구경했던 기억이 있음직하다.

그러나 40대 아저씨가 돼서까지 장난감에 빠져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그것도 보유한 장난감이 1만5천여종에 들인 돈이 8천여만원에 달한다면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군사용 시뮬레이션 프로그램과 온라인 게임을 개발하는 타프시스템 정재영(41)사장.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입이 딱 벌어진다.

네댓평 남짓한 사장실에 수천종의 인형과 탱크.비행기 모형이 가득 차 있다. "공간이 부족해 특별히 정이 가는 것만 모아놓았고 나머지는 집 창고에 박스째로 쌓여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 규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입이 벌어진다. 종업원수 1백여명에 연간 매출액이 1백억원선이다. 창업한 지 11년 됐고 코스닥에도 등록된 제법 튼실한 회사다. 장난감을 모으면서 회사는 언제 이만큼 키웠나 싶다.

그가 인형과 조립식 모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다. 남들과 다른 점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취미가 이어졌다는 점이다. 대학 때는 며칠 밤낮을 투자해 조립한 로봇 모형의 다리를 여자 친구가 부러뜨렸다는 이유로 크게 다투다 헤어진 적도 있다.

"관심없는 사람들에겐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할지 몰라도 제겐 꿈을 키워준 물건들이거든요."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비행기 장난감을 손에 들고 입으로 붕붕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는 아이를 떠올려 보라"고 주문한다. "그 아이가 파일럿의 꿈을 키우는 방법이 바로 그거 아니냐"는 얘기다.

그는 "미국.일본의 만화.게임 캐릭터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언젠가 근사한 국산 게임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탱크.비행기 모형을 조립하면서는 세계적인 군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꿈도 키우게 됐다고 한다.

정사장은 요즘 수집품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최근 개발을 마친 온라인 게임 '루시아드'의 디자인팀 직원들이 게임 캐릭터를 도안하는데 그의 장난감 보물창고가 크게 도움이 된 것. 지난 30여년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 인형이 몽땅 모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회사 매출액 신장의 일등공신인 군용 프로그램에도 그가 장난감을 수집하며 쌓은 노하우가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대포.탱크의 정교한 모형을 조립하며 무기의 특성과 성능에 대해 웬만한 군사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는 "각국의 무기 모형을 조립하다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련의 전차는 운전병이 손을 돌려 등을 긁을 수 없을 정도로 좁다. 사람에 기계를 맞춘 것이 아니라 기계에 사람을 맞춘 것이다.

독일 전차의 경우 '업그레이드 버전'이 다른 나라의 그것에 비해 훨씬 많다. 실용과 개선을 중시하는 독일인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정사장에겐 요즘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두 자녀가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아빠와 장난감을 두고 다투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그는 "아내는 기가 막혀 하지만 아이들과 친해지는데 장난감만한 것도 없다"며 웃었다.

그는 좀 더 나이가 들면 자신의 수집품으로 장난감 박물관을 세우거나 어린이 박물관에 기증할 생각이다. 장난감을 통해 키워온 꿈을 다음 세대와 공유하고 싶어서다.

김선하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